강상현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지난주 천안함 사건에 대한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 발표에 이어 이번주에는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까지 나왔다. 그로 인해 이제 ‘북한의 도발’은 추정이 아닌 더욱 굳건한 ‘사실’이 되었다. 국내의 거의 모든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하고 있으며, 반복해서 보도하고 있다. 특히 주요 보수언론들은 조사단 발표 이후 사설과 칼럼 등을 통해서는 북한의 ‘반민족적’ 도발을 규탄하고, 자위권 발동을 통한 응징을 촉구하고 나섰다.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유엔 안보리 회부는 물론, 향후 무력침범 때 즉각 자위권을 발동할 것이라고 일갈했다. 어쨌든 이로 인해 한반도 정세는 상당한 긴장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아마 이런 ‘북풍’은 토네이도가 되어 지방선거 내내 맹위를 떨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여당은 천안함 사건을 선거의 호재로 적극 활용할 계획을 분명히 한 것 같다.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5월20일에 마치 날을 잡은 듯이 천안함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그날 발표시점에 맞추어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방송사 사장들을 모아놓고 안보의식 강화를 주문했다고 한다. 방송사 사장들의 면면이 대부분 대통령의 사람들이니 ‘북한 도발’에 대한 방송 대책회의나 다름없어 보인다. 뒤이은 23일에는 한나라당에 ‘북한의 천안함 공격 대책 특별위원회’가 출범했고, 바로 다음날 단호한 조처를 강조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이어졌다. 앞으로도 정부 여당의 천안함 관련 후속조처들이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이런 분위기를 업고 실제 지방선거 과정에서 여당 후보자들과 여권 실세들은 ‘북한의 도발’을 선거의 메인 메뉴로 계속 부각시키고 있다. 그리고 조사 과정의 객관성이나 발표된 조사결과의 신빙성 등에 대한 야당 쪽의 문제제기나 책임자 문책 주장 등에 대해서는 “국가관이 의심스럽다”거나 “북한 방송을 보는 것 같다”며 색깔론을 뒤집어씌우고 있다. 조사결과 발표에 대한 반론을 곧 ‘북한 도발’에 대한 부정과 등식화시켜 버린다. 그것은 곧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이라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 도발’은 강조되고 ‘경계 실패’는 부차적인 문제로 만들어버린다. 천안함 사태를 ‘북한의 도발’이라고 단언하는 순간, 그것은 곧 우리의 대북 경계가 완전히 실패했고 국가보안이 엉망이었음을 자인하는 것이 된다. 이 엄청난 국방 실책의 일차적 책임은 정부와 군에 있다.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에게 사죄해야 할 정부 여당이 이를 추궁하는 야당과 국민에게 되레 호통을 치는 꼴이니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게다가 ‘대북 경계 실패’로 보면 분명히 선거의 악재일 수밖에 없는 이번 사태를 정부 여당은 ‘북한 도발’로 옷을 갈아입힘으로써 오히려 호재로 바꾸고 있으니 그 대담한 변신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어느 한 학자가 천안함 조사결과 발표를 지켜보면서 “패잔병이 개선장군 행세를 한다”고 개탄했다고 하니, 그러한 요지경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천안함 사태를 지방선거의 호재로 맘껏 활용하고 있는 정부 여당에 정면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언론을 찾기가 더더욱 어려워져 가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이 실체적 진실과 문제의 본질을 말하기보다는 정부 여당의 언론플레이에 놀아나고 있는 형국이다. 방송은 더더욱 그렇다. 아직은 부실하고 어설픈 증거들이 ‘결정적 증거’가 되고, 그것이 다시 ‘북한 도발’로 비약하는 논리에 대해서는 충분한 문제제기들이 가능하겠건만, 우리의 주요 언론들은 냉정하지가 않다. 논리적이지도 않다. 그런 언론이 대세를 이루는 한 우리 사회의 불행은 반복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든 언론이 다시 불어오는 세찬 ‘북풍’에 같이 휘말리면서, 지방선거의 실질적으로 중요한 이슈들을 삼켜버릴 때, 이제는 우리의 민주주의마저 침몰 위기에 빠질 것 같아 불안하다.
강상현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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