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다시 냉전의 추억인가? 사라졌던 ‘전쟁’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햇볕정책을 폐기하고 달빛정책을 선언했던 순간부터 예고된 일이다. 별일 없던 남북관계가 천안함 사건으로 악화되었는가? 아니다. 이미 그 이전에도 남북관계는 최악이었다. 천안함 사태는 서해에서 다시 냉전이 조성되면서 일어났다. 누가 평화의 바다를 냉전의 바다로 만들었나? 노무현 정부에서 서해교전은 없었다. 물론 1999년과 2002년 두 번 서해에서 우발적 충돌을 겪었다. 이후 어떻게 대응했는가? 이명박 정부와 달랐다. 보복의 악순환이 아니라, 서해평화 정착을 선택했다. 그리고 2007년 10·4 정상회담에서 포괄적인 서해평화협력지대를 합의했다. 맹목적 이념에 사로잡혀 이런 사실을 거꾸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공동어로와 평화수역을 북한이 요구했고, 서해평화협력지대는 북방한계선을 양보한 대가라는 주장이다.(<동아일보> 5월26일치 사설) 사실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서해평화 정착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는가? 험난했던 북한과의 협상 과정을 아는가? 10·4 합의는 해상경계선 문제를 건들지 않고 서해에서 평화와 경제협력의 선순환을 합의한 것이다. 한 뼘의 바다도 양보한 적이 없다. 그리고 보수언론들은 노무현 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대북 심리전 방송을 중단한 것을 비판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왜 그랬을까? 서해에서 우발적 충돌 방지 합의가 더 중요했다. 그 과정에서 북한의 요구를 수용했다. 맞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에서 이미 합의한 상호 비방중상 금지 원칙을 지키는 것이 잘못인가? 그리고 서해에서 긴장완화와 대북선전방송을 바꾼 것이 잘못된 일인가? 전쟁불사의 시각에서 보면 이해가 안 될 것이다. 그러나 평화정착의 시각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대북선전방송의 경우, 그것은 전쟁으로 가는 길이다. 방송을 시작하면 북한이 격파사격을 한다고 했다. 우리 정부도 대응사격을 한다고 선언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되면 국지전이 발생한다. 전쟁위기설로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불안심리가 확산되어, 북풍이 역풍이 되는 것이 두려운가? 그러면 전쟁불사를 의미하는 대북조처를 거둬야 한다. 대한민국의 어떤 정부도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를 포기한 적이 없다. 전두환 정부가 1983년 아웅산 사건에도 불구하고 84년부터 남북대화에 나서고 정상회담을 추진한 이유가 무엇인가? 노태우 정부가 87년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에도 불구하고 집권 이후 7·7 선언을 하고, 총리급 회담을 추진했으며, 결국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북한이 예뻐서가 아니다. 긴장이 고조되면 우리가 잃을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평화정착이 국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보수라고 말하지 마라. 전두환·노태우 정부 같은 원조 보수들도 전쟁불사를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보수라고 해서 한반도 정세 관리 책임을 망각하지 않았다. 전쟁불사 패러다임은 원조 보수정권에서도 볼 수 없는 말 그대로 ‘뉴라이트’의 특이한 인식일 뿐이다.
최근의 한반도 정세에서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오바마 행정부다. 과거 김영삼 정부 때는 클린턴 행정부가 나서서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전쟁불사’ 패러다임에 편승했다. 북풍 국면을 활용하여 일본을 굴복시켰고, 한-미 관계에서 쟁점현안을 유리하게 협상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전술적 이익을 챙겼다. 그러나 동북아 정세의 안정적 관리자라는 위상을 잃었다. 소탐대실이다. 앞으로의 국면에서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중국이나 러시아처럼 한반도 평화정착의 의지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평화는 공기와 같다. 있을 때는 잘 모른다. 달빛정책의 시대에 햇볕정책이 빛나듯이, 전쟁불사의 국면에서 평화의 가치가 소중해졌다. 그리고 누가 전쟁 위기를 부추겼는지 기억해야 한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평화는 평화를 꿈꾸는 자들의 것이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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