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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후텐마는 묻는다 / 김영희

등록 2010-06-01 18:04수정 2010-06-01 22:37

김영희 국제뉴스팀장
김영희 국제뉴스팀장




‘치루다이’. 오키나와어로 ‘낙담’ 정도에 해당하는 이 말은 오키나와 근현대사의 고비마다 등장한다. 130여년 전 일본과 청나라 모두와 관계를 유지하던 류큐왕국에 대해 마쓰다 미치유키 처분관은 1879년 군대를 이끌고 슈리성에 들어가 오키나와현의 설치를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다시 1951년, 2차 대전 당시 일본에서 유일하게 지상전이 전개돼 9만명이 넘는 민간인이 숨졌음에도 오키나와인들은 주민투표에서 7할이 ‘본토 복귀’를 원한다. 하지만 다음해 체결된 미-일 강화조약은 이를 외면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돌아온 것은 1972년. 이때를 전후해 본토의 미군기지가 대거 오키나와로 이동한다.

“그래도 하토야마를 욕하고 싶지 않다. 처음으로 기지의 ‘현외 이전’이란 말을 꺼낸 일본 총리니까.” 후텐마 비행장 대체시설 건설지가 오키나와 현내로 가닥이 잡혀가던 때에도 이렇게 말하는 오키나와 주민들이 적잖았다. 그만큼 기대는 컸다.

지난달 28일 미·일 양국의 발표를 계기로 오키나와의 낙담은 이제 분노로 바뀌었다. 분노는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에 대한 실망을 넘어, 본토의 차별 및 구조적 폭력에 대한 인식에서 온다. 그 차별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 게 일본 주류 언론들의 보도 태도였다.

지난 1월 오키나와 지역신문들은 ‘본토 지식인’ 340명의 ‘오키나와 현내 이전 반대 성명’을 1면 기사로 다뤘다. 하지만 이 소식은 일본의 주요 전국지들에선 아예 찾아볼 수가 없었다. 3월 도쿄에서 6000여명이 모여 연 집회나 지난달 2000여명이 촛불을 들고 벌인 도심 시위도 마찬가지였다. 28일 후텐마 현내 이전 결정을 설명하는 총리의 기자회견 때엔 “정치인이 주도하는 탈관료 정치를 한 탓 아닌가?” 같은 질문이 쏟아졌다.

주류 언론의 관심은 미-일 동맹이 흔들린다거나 하토야마 총리가 언제 사퇴할까 하는 것뿐이었다. ‘오키나와에 존재하는 해병대가 반드시 미-일 안보의 전제인가?’라는 물음은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일본 영토의 0.6%인 오키나와엔 주일미군기지 75%가 몰려 있다. 이전부터 군사지역이거나 국유지였던 본토 기지와 달리 대부분 사유지나 지자체 소유지를 일방적으로 ‘차출’한 것이다. 전 오키나와현 지사 오타 마사히데 참의원은 이런 불평등에 대해 “이것이 일본 본토의 민주주의인가?”라고 묻는다.

일본의 지식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지난해 인터뷰를 했던 사카모토 요시카즈 도쿄대 명예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평생을 ‘미-일 안보조약을 대신할 체제 구축’ 논지를 펴온 여든세살의 이 노교수가 보낸 답에는 행간마다 일본 지식인의 고뇌가 읽혔다. 그는 “일본 지식인과 활동가들의 의식엔 오키나와가 박혀 있는 가시 같은 고통으로 언제나 남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선,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미군기지를 본토 이곳저곳에 ‘평등하게’ 옮겨야 한다는 식의 생각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본토도 포함한 ‘민주화’를 위해선 미군기지의 삭감이 불가결한데, 이것이 일본의 안보에 마이너스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들이 당장 나온다.”

한국의 상황이 겹쳐진다. 안보조약 안에 군사기지 조항을 갖고 있는 나라라곤 일본과 한국 정도다. 사카모토 교수는 답글 끝에 이렇게 물었다.


“만일 오키나와의 미군기지를 줄이는 데 일본이 성공하면(가능성은 현재로선 제로로 보이지만) 한국 정부는 환영할까, 아니면 내심 반대할까? 동아시아에 있는 미군기지를 감축하기 위해선 한국과 일본의 긴밀한 협력이 불가결한데….” 우리는 대답할 말이 있는가?

북풍 속에 선거의 아침이 밝았다.

김영희 국제뉴스팀장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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