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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가자 구호선과 힘의 한계 / 아모스 오즈

등록 2010-06-09 21:03

아모스 오즈 이스라엘 작가
아모스 오즈 이스라엘 작가
2000년 동안 유대인은 자신들의 등 뒤에 가해지는 채찍이라는 형태로만 무력을 인지했다. 최근 몇십년 동안 우리 유대인들은 스스로 무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 힘은 반복해서 우리를 중독시키고 있다. 반복해서 우리는 우리가 맞닥뜨리는 모든 문제를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상상하고 있다. 큰 망치를 가진 사람에게는 모든 문제가 못처럼 보인다는 격언이 있다.

국가가 수립되기 전 시기에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주민들은 대부분 무력의 한계를 이해하지 못했고, 어떤 목적이라도 무력으로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이스라엘 초창기의 다비드 벤구리온이나 레비 에슈콜 같은 지도자들은 무력엔 한계가 있고 그 경계를 넘어가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1967년 6일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군사력에 집착하고 있다. 그 주문은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은 더 큰 힘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는 이런 견해의 하나이다. 이는 하마스는 군사력으로 패퇴시킬 수 있다는, 더 일상적인 말로 하면 팔레스타인 문제는 해결되기보다는 분쇄돼야 한다는 잘못된 가정에 기원한다. 그러나 하마스는 단순히 테러조직이 아니다. 하마스는 하나의 이념이다. 많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고립감과 절망감으로부터 성장한 필사적이고 열광적인 이념이다. 어떤 이념도 힘으로, 봉쇄로, 폭격으로, 탱크로, 해병 특공대로 패퇴시킬 수는 없다. 이념을 패퇴시키려면 더 나은 이념을, 더 매력적이고 수용가능한 이념을 제시해야 한다.

이스라엘에게 하마스를 몰아내는 유일한 길은 1967년 정해진 국경선대로 동예루살렘에 수도를 두는, 서안과 가자지구에서의 독립국가 수립에 관한 조약을 팔레스타인 쪽과 신속히 체결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마무드 아바스 및 그의 정부와 평화조약을 맺어야 하고, 그래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의 분쟁으로 축소해야 하는 것이다.

후자의 분쟁은 결국 하마스와의 협상만으로, 혹은 아바스의 파타 쪽과 하마스 사이의 통합을 통해 더 합리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이스라엘이 가자로 향하는 수백척의 배를 나포한다 해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군을 투입해 수백번 점령한다 해도, 이스라엘이 군과 경찰, 비밀부대를 수백번 투입한다 해도 그 문제를 풀 수는 없다. 문제는 이 땅에 우리만 혼자 있는 것이 아니고, 팔레스타인도 혼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에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고, 팔레스타인만 혼자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들이 이 단순한 사실의 논리적 결과를 인식할 때까지, 우리 모두는 이스라엘의 봉쇄 아래 영원히 포위된 가자지구에서, 국제사회와 아랍에 의해 포위된 이스라엘에서 살아갈 것이다.

내가 군사력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것은 아니다. 군사력은 이스라엘에 사활적 중요성을 가진다. 군사력이 없다면 우리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군사력의 효과를 경시하면 국가에 큰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힘이라는 것은 이스라엘의 파괴와 정복을 막고 우리 목숨과 자유를 지키는 예방적인 차원에서만 효과가 있다는 것을 단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된다. 힘을 자위나 예방적 차원이 아니라, 가자 건너편에 있는 국제수역에서 공해상에까지 나아가 가자 구호선을 습격한 것처럼 문제를 박살내고 이념을 분쇄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려는 기도들은 모두 더 큰 재앙으로 귀결될 것이다.

아모스 오즈 이스라엘 작가


* 아모스 오즈는 최근 10년 동안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이스라엘의 대표 작가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공존을 주장하는 오즈는 이스라엘의 가자 구호선 공격에 비판하는 이 글을 <뉴욕 타임스> <가디언> <르몽드> 등 30개국 권위지에 기고했다. 그는 이 글을 한국에서는 <한겨레>를 지정해 투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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