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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종석칼럼] 북풍 거부한 위대한 민심과 6·15

등록 2010-06-14 20:20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천안함 사태로 북풍몰이가 한창이던 지난 5월 말 한 시민단체의 초청으로 지방에 갔었다. 강연 전에 시민 한 분이 내게 조심스럽게 다가와 물었다. 참여정부 시절 옛날 보도연맹처럼 전쟁이 나면 국가보안법 위반 경력자들을 소개(疏開)시키는 프로그램이 있었느냐는 것이었다. 6·25 때 좌익 전향자들을 모아 만든 이 단체에 속한 많은 사람들이 무고하게 학살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뜻밖의 질문이었다. 내가 아는 한 그런 것은 없었으며, 지금도 없을 것이라고 했으나 민주화운동으로 투옥된 경력이 있는 그는 두렵다고 했다. 참담했다. 아, 우리에게 분단은 그냥 분단이 아니다! 그것은 아직도 부당하게 우리의 삶을 쥐고 흔들고 있지 않은가?

냉전 시기 남북의 정권은 적대적 긴장과 대결국면을 이용하여 정치적 이익을 얻는 적대적 의존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최근 나는 남북 사이에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고 화해협력의 흐름이 지속되면서 국민들이 평화가 주는 안보적 이익을 체득하게 되어 남북 긴장 고조를 불편하게 여기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포용정책을 부정한 이명박 정부도 적대적 의존 시대로 돌아가지는 못하리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극우언론과 여권 인사들 사이에 적대적 의존의 시대를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들은 자신과 다른 분석을 내놓거나 정부 발표에 논리적 의문점을 제기하면 무차별적으로 ‘친북’, ‘종북’으로 매도하며 북풍몰이에 올인하였다. 천안함 조사결과 발표를 계기로 정부는 역대 남한 당국이 북한을 어렵게 설득하여 마련한 남북간 군사적 긴장 완화와 교류협력 증진을 위한 합의문들을 한순간에 파기했다. 남북 충돌을 제어할 장치가 사라졌고 호전적인 북한을 상대로 한 남한 정부의 주도적인 평화관리 능력도 소멸되었다. 남의 초강경 조처에 북은 한술 더 뜬 강경대응을 하면서 남북은 “누가 더 비겁자인가”를 두고 극한게임을 하는 철부지 치킨에 다름없었다. 그나마 중국이 충돌 가능성을 견제했다.

여권이 북풍을 이용해서 얻고자 한 것은 지방선거에서의 압도적 승리였다. 그 승리를 발판삼아 매카시즘을 부활시키고 싶었는지 모른다. 고백하건대, 나는 여권의 북풍몰이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더 위험해지고 평화가 질식 상태에 놓일 것을 걱정했다. 다만 포용정책 10년을 거치면서 성장한 시민사회의 평화의식이 이 광풍을 이겨낼지 모른다는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국민은 북풍을 거부했다. 북풍에 가려졌던 정부의 일방주의와 4대강 사업, 세종시 사업, 안보무능력 등을 심판했다. 국민은 극우언론이 내뿜는 북풍의 광기가 자신에게 투사되는 것을 거부했으며, 북한에 고통을 주기 위해 기존의 긴장완화 장치들을 허물어뜨리며 우리의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를 전쟁불사를 외치는 정부에 “노”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이 위대한 민심을 느끼면서 6·15공동선언 열 돌을 맞이한다. 비록 이명박 정부가 6·15를 부정했지만 6·15가 씨를 뿌린 한반도 평화를 향한 시민의식과 행동은 국민규범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전쟁이라는 반문명적 용어가 횡행하는 한반도의 현실은 6·15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오늘 6·15를 맞아 민주·평화진영은 몇 가지 과제를 실천함으로써 위대한 민심에 보답해야 한다고 본다. 국민은 북풍을 거부했지만 북풍 효과가 아주 가신 것은 아니며 그 세력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따라서 위정자들이 다시는 시대착오적인 북풍놀이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어떻게 그들이 북풍을 일으키려 했으며, 그것이 우리 국민의 생명을 얼마나 위험하게 만들었는지 밝혀내야 한다. 남북 당국이 벌이는 위험천만한 치킨게임을 멈추게 하고 선언적으로 파기된 남북 사이의 각종 합의들을 되살려야 한다. 그리고 선거 민심으로 확인된 국민들의 평화의식과 합리주의적 사고를 돌이킬 수 없는 국민의식으로 자리잡도록 해야 한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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