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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한나라당 쇄신파, 힘내라! / 김의겸

등록 2010-06-15 18:07

김의겸 정치부문 선임기자
김의겸 정치부문 선임기자
“꼭, 열린우리당 꼴 나는구먼.” 쇄신 파동을 보면서, 적잖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혀를 찬다. 망하는 길이라는 거다. 그러나 따져보면, 열린우리당보다는 9년 전 새천년민주당(민주당)에 더 가깝다.

2001년 5월 시작된 민주당 쇄신도 잇따른 선거패배가 원인이었다. 이동관·박형준 등의 청와대 참모가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사람”으로 지목받듯이, 당시는 권노갑·박지원 두 사람이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비선라인”이었다.

쇄신파에 대한 반격 논리도 비슷하다. 민주당 동교동계는 “쇄신파가 오히려 쇄신의 대상”이라거나, 특정인을 가리켜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동지도 선배도 대통령도 배신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심지어 전당대회 출마 자금 등 은밀한 부분까지, 기자들의 귀에 대고 속삭여주었다. 요즘 한나라당 쇄신 주도세력에게 쏟아지는 “청와대를 장악하기 위한 음모”,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떠넘기려는 비겁한 짓” 등의 비난은 오히려 점잖은 편이다.

대통령이 겉으로나마 공감을 표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김대중 대통령은 “모두 애당하고 애국하는 충정”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청와대와 내각의 진용을 개편하겠다고 약속해, 쇄신파의 등을 다독였다.

그러나 민주당 쇄신파는 대오를 풀지 않았다. 늦봄에 시작한 쇄신요구를 초겨울까지 이어갔다. 조직은 더 몸집을 불렸다. 그런 몸부림은 그해 말 기어코 ‘민주당 발전과 쇄신을 위한 특별대책위원회’를 낳고야 만다. 당의 주류가 쇄신파의 외침을 받아들여 당의 체질 개선에 나선 것이다. 그 결과가 지금은 너무 당연하나, 그때로서는 혁신적인, 국민참여경선제도다. 노무현 당선이라는 기적을 일군 토대다. 쇄신이 없었다면 아마 이인제 후보가 이회창 후보에게 무난하게 지는 경로를 밟았을 것이다.

한나라당 쇄신파도 기로에 섰다. 15일 아침 모였으나 엉거주춤한 모양새다. 사실 2000년 미래연대로부터 시작하는 한나라당 개혁파의 역사는 영광보다는 좌절의 역사였다. 곧잘 입바른 소리를 하나 싶다가도 결국은 대주주들의 눈치를 보고 말았다는 혐의가 짙다. 또 비슷한 또래가 잘나간다 싶으면 은근히 깎아내리는 게 ‘우정’의 수준이었다. 뭉쳐도 시원치 않을 판에 이러니, 뿔뿔이 제 살길을 찾아 나서는 게 개혁파의 종착역이고는 했다.

이번에 뭉친 쇄신파에게 객관적인 정세는 과거보다 더 열악해 보인다. 친이-친박의 틈새에서 숨쉴 공간이 좁다. 쇄신파라고 해봐야 초선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이들은 서로 발을 맞춰본 경험도 없다. “밭은 척박하고, 농부는 서툴고, 공동경작의 경험은 없다. 게다가 막걸리 한잔 같이 먹은 적도 없다”는 김성식 의원의 표현이 딱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처지는 훨씬 절박하고 다급해 보인다. 50명이 넘는 초선의원들이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몇 시간 동안 속살까지 드러내는 논쟁을 벌인 것은 한나라당 초유의 일이었다. “경직된 한나라당스러움을 걷어내고, 붉은 한나라가 되는 걸 두려워 말자”(홍정욱 의원)는 도발적 문제제기는 발랄하기까지 하다.


이들이 몇몇 청와대 참모 교체를 넘어 진정으로 꼴보수 한나라당을 쿨(cool)보수로 바꿔준다면, 다음 정권이 어디로 가든 우리 사회는 도약의 쾌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이 10번 바뀌는 것보다 한나라당이 한번 제대로 바뀌는 것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더 크게 굴리는 것이라 믿는다. 한나라당 쇄신파가 한발 더 내딛기를 바란다. 정치, 길게 할 것 같지만 의외로 짧다. 버나드 쇼의 묘비명에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고 써 있다지 않는가.

김의겸 정치부문 선임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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