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환 주성대 부총장 국제개발전략연구소장
요즘 한국 외교안보 당국자들의 최대 당면과제는 천안함 사건 해결 과정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지지를 얻어내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북한의 2차 핵실험 뒤 유엔 안보리의 추가제제에 동의해준 전력을 들어 은근히 낙관하는 분위기도 있지만 현지에서 느낀 현실은 좀 다른 것 같다.
현재 러시아 쪽은 천안함 폭침의 주체를 북한으로 보는 우리 쪽의 시각에 선뜻 동의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의 조사 뒤 입장을 정한다는 원칙만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만약에 한국을 방문한 전문가들이 발표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거나 “뭔가 회의적인 언급을 내놓는다면 그다음 한국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도 쏟아냈다.
한국이 원하는 대로 천안함 사태를 해결하려면, 러시아의 도움과 국제사회의 지지를 명확히 얻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한-러의 소통은 뭔가 삐걱거리는 듯하다. 러시아는 한국에 전문가 파견을 결정한 뒤에도 한동안 몇 명이 갈 것이며 어느 부대 소속인지 언제 파견할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언급을 회피해 모스크바 주재 한국 외교관들을 당황하게 했다고 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 한-러 포럼장에서 진행된 전문가들의 토론 시간엔 이런 분위기가 더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심지어는 ‘북한 핵개발에 대한 러시아 쪽의 책임론’에 발끈한 러시아 쪽이 ‘러시아가 2차대전에 참전하지 않았으면 아직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배하에 있고 그렇다면 북한도 핵개발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냐’ ‘한국과 러시아의 수교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이냐’고 반발하는 등 험악한 대립이 이어졌다.
한-러 이견과 오해는 서둘러 봉합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봉합 과정에서 반드시 염두에 둘 것이 있다. 이러한 불만이 단순히 이번 사건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것은 한국 외교의 대러시아 정책이 가진 비전과 방향이 무엇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는 데에도 기인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전문가들은 20년 전 한국과 러시아가 냉전의 한 축을 허물었던 비전과 용기가 지금 어디로 갔느냐며 안타까워했다. 당시 냉전의 한 축을 깨고 북방정책을 추구한 한국의 용기와 비전이 사라지고 오로지 단기 목표(이번의 경우에는 천안함)에 집착하는 듯한 한국의 모습이 뭔가 안타깝다는 것이다.
한국이 소련과 수교를 하지 않았다면 그 2년 후 이루어진 중국과의 수교도 매우 어려웠을 것이며 한국 기업들의 중국 시장 진출도 그렇게 빠르지 못했을 것이다. 냉전적 진영외교의 한계에서 여전히 힘들어하면서 북방외교의 마지막 목표지인 통일을 위한 남북한 관계의 협력 또한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북방외교는 당시 성장하던 한국의 산업과 경제구조상 새로운 시장과 기술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에서 지구의 반을 새롭게 시장으로 추가한 의미가 있다.
러시아인들은 소련군의 베를린 입성일(1945년 5월9일)이 포함된 5월과 6월 전쟁과 평화의 이슈가 제기됐을 때 집단적으로 반응하는 정도가 평상시보다 훨씬 더 날카롭다. 바로 이러한 때 터진 천안함 이슈를 둘러싼 러시아의 반응과 태도는 그래서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20년 전 한반도의 세력균형에 변화를 초래한 당사자로서 이번 사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한반도와 동북아에 새로운 세력균형의 변화가 촉발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 더욱 민감한 것 같다. 천안함을 둘러싼 한국의 대러 외교는 좀더 긴 호흡을 가질 필요가 있다. 만약에 지금처럼 단기 성과에 집착한다면 그 결과도 예상하기 어렵지만 장기적으로 러시아를 우리 편에 끌어들인 북방외교의 성과를 천안함과 함께 침몰시킬지도 모른다. 김석환 주성대 부총장 국제개발전략연구소장
러시아인들은 소련군의 베를린 입성일(1945년 5월9일)이 포함된 5월과 6월 전쟁과 평화의 이슈가 제기됐을 때 집단적으로 반응하는 정도가 평상시보다 훨씬 더 날카롭다. 바로 이러한 때 터진 천안함 이슈를 둘러싼 러시아의 반응과 태도는 그래서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20년 전 한반도의 세력균형에 변화를 초래한 당사자로서 이번 사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한반도와 동북아에 새로운 세력균형의 변화가 촉발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 더욱 민감한 것 같다. 천안함을 둘러싼 한국의 대러 외교는 좀더 긴 호흡을 가질 필요가 있다. 만약에 지금처럼 단기 성과에 집착한다면 그 결과도 예상하기 어렵지만 장기적으로 러시아를 우리 편에 끌어들인 북방외교의 성과를 천안함과 함께 침몰시킬지도 모른다. 김석환 주성대 부총장 국제개발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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