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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인가 / 박호성

등록 2010-06-21 22:15

박호성 서강대 정외과 교수
박호성 서강대 정외과 교수
혹시 엠비(MB)가 ‘이적행위’의 원조는 아닐까?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천안함 문제와 관련하여 처음에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고 얘기한 사람이 누구냐”고 반문하며, “바로 이명박 대통령 아닌가. 천안함 사고가 나고 나서 북한의 소행이 아닌 것 같다고 하는 취지의 얘기를 한 장본인이 대통령” 아닌가 하고 일갈한 적이 있다.

정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천안함 조사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서한을 보낸 참여연대를, ‘방귀 뀐 놈이 성내듯’, “이적행위”를 저지른 ‘반국가사범’이기라도 한 것처럼 ‘색깔론’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물론 보수세력들도 놓칠세라 “국제적 망신”까지 자초했다고 비난을 퍼붓는다.

과연 어느 쪽이 국제적으로 한국의 ‘국격’에 망신을 주고 있을까? 당연히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한 쪽일 수밖에 없다. 으레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라 말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부가 앞장서서 자유민주주의에 배치되거나 모순되는 일들을 솔선해 저지르고 있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소위 ‘색깔론’이, 기회 있을 때마다, 올림픽 성화처럼 불타오른다.

그러나 바로 ‘관용’이 국제적으로 공인된 자유민주주의의 근본 원칙 가운데 하나임을 명심해야 한다. ‘관용’이란 자신이 선택한 대로 믿고 행동할 수 있는 타인의 평등한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비록 타인의 어떠한 행위나 신념이 마음에 들지 않고 동의할 수 없는 것이라 해도, 그것을 인정하고 훼방 놓지 말아야 할 의무를 일컫는다. 서로가 가지고 있는 견해나 신조를 절대적인 것으로 고집하지 않는 태도, 즉 대립적인 이해관계의 존재를 서로 인정하면서, 협상과 타협을 통해 그 대립성을 풀어 나가려는 호혜적인 자세가 곧 관용인 것이다. 그러므로 관용의 적은 바로 ‘광신’이다. ‘광신’이야말로 반자유민주적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참여연대를 몰아붙이는 현 정부의 작태가 오히려 ‘광신’에 가깝다. 이 지상의 그 어느 누구도 인간의 신념과 양심을 신처럼 절대적으로 판정 내리고, 그 판단을 반드시 추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것은 독단과 교조가 난무하는 전체주의 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른바 ‘좌파’의 자세를 아우르며, 과격하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영어 ‘래디컬’(radical)의 어원은, ‘뿌리째 파고든다’는 의미를 가진, ‘라딕스’라는 라틴어다. 말하자면 뿌리까지 파고들어 속속들이 따지고 드는 단호한 태도를 일컫는 말이다.

실은 우리 선조도 옛적부터 이런 ‘급진적인’ 정신을 보배처럼 높이 받들었다. 예컨대 ‘라딕스’와 거의 동일한 의미를 지닌 ‘발본색원’하는 정신이야말로 우리들의 고고한 자랑거리가 아니었던가. 오늘날의 어법으로 해석하면, 우리 조상은 원래부터 ‘래디컬’한 좌파를 높이 평가했던 듯하다.

그런데 엠비가 솔선해서 저지른 ‘이적행위’를 어쩔 것인가. 정부는 지금 민의를 거스르면서까지 남북관계 개선 및 4대강 사업 철회 등을 나 몰라라 내팽개치고서는, 국민 모두를 줄줄이 원폭 피해자처럼 만들고 있다. 최근에는 경찰의 고문·가혹행위까지 가세했다. 여권은 마치 ‘백의의 천사’이며 ‘정의의 사도’라도 되는 양 위세를 떨치려 하지 말고, 이런 불행을 자초한 정치적 무능을 겸허히 자성해야 한다. 진정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책임정치를 구현하겠노라고 국민 앞에 엄숙히 다짐해야 한다. 대통령은 타협 없는 원칙은 독선이며, 원칙 없는 타협은 야합일 뿐이라는 진리를 가슴 깊이 되새겨야 할 것이다.


성현이 “백성의 음성은 신의 음성”이라 했다. 비정부기구(NGO)의 일상적인 활동을 펼쳤을 따름인 참여연대의 이태호 처장이 던진 “합리적 비판을 수용하는 게 민주주의”라는 말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란, 새가 두 날개로 날듯이 찬반양론을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박호성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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