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 교수
의사인력 과잉 배출!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같은 맥락에서 정부는 2004년 연간 3300명이던 입학정원을 3000명 갓 넘는 수준으로 감축했다. 하지만 묶어놓은 의대 정원은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첫째, 의사인력이 적정하게 공급되지 않으면 국민의 의료접근성이 제약된다.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활동의사’ 수는 한의사 포함 1.7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3.1명의 절반 수준으로, 터키를 빼고 가장 낮다. 우리의 의대 입학정원이 높기 때문에 차이는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과연 그럴까? 다시 오이시디 통계를 보자. 우리의 의대 졸업생 수는 인구 10만명당 9명으로 오이시디 평균 10명보다 적다. 입학정원 감축 이전의 졸업생 수치인데도 그렇다.
반면에 우리 국민의 의료수요는 다른 나라에 비해 낮지 않다. 국민 1인당 연간 12회 외래진찰을 받는데, 오이시디 평균 7회를 훨씬 웃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의사는 1인당 연간 6800명의 환자를 본다. 오이시디 평균 2200명의 세 배다.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나라의 의사 수는 부족하지만, 의사 개개인이 열심히 일해서 국민의 의료접근성을 유지해주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반면에 3분 진료의 스산한 현실도 암시한다.
둘째, 의사인력의 희소가치가 불균형적으로 커지게 되면 사회의 인력 배분에 왜곡이 생긴다. 최근 10년 사이에 전국의 수재가 아니면 의대에 들어갈 수 없게 바뀌었다. 성적 좋은 학생들이 의대를 가는 것을 탓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극단적인 의대 선호를 야기하는 사회체제는 바로잡아야 한다. 의사 면허제는 의사에게 특권을 주자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인 의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들만이 의술을 베풀 수 있게 하자는 취지이다. 이러한 소양을 갖추는 데 전국 몇 % 안에 드는 머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지금 의대로 가는 머리들은 원래는 뛰어난 과학적·공학적 성과를 내기 위해서 필요하다.
그러면 정부는 그동안 왜 의사 진입 규제를 고집해왔을까. ‘의사유인수요’(physician induced demand: PID)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의사와 환자 사이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크다. 의사는 공급자이면서 동시에 환자의 대리인이 되어서 의료의 수요를 결정한다. 필요시 불필요한 의료수요도 창출할 수 있다. 요컨대 의사 수가 늘면 의료비가 높아져 환자의 부담이 늘어난다는 이론이다. 원래의 의도와는 달리 의사 수를 줄이자는 데 자주 인용된다. 그러나 의사유인수요는 의사 인력이 남아돌 때 문제가 된다. 의사인력 자체가 부족한 우리와 같은 상황에서는 공급의 증가는 필요한 의료수요를 충족시킨다. 좋은 일이다.
노인인구의 증가로 만성질환자도 늘고 의료수요는 급격히 팽창하고 있다. 반면에 입학정원 감축으로 의료공급은 이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는 이미 나타나 있다. 올해의 인턴과 레지던트의 정원은 3853명, 4056명인데 의사국시의 정원은 3224명에 불과했다. 현재의 의대 졸업생으로는 병원이 필요로 하는 수련의를 채울 수 없다. 의사인력을 키우는 데는 10년 이상 걸린다. 더 늦기 전에 정상화해야 한다. 의사 과잉을 걱정하지 말라. 의과대학 출신에게 적합한 일은 환자 보는 것만이 아니다. 제약회사, 연구소, 보건소도 의사인력을 필요로 한다. 워낙 희소가치를 누리다 보니 웬만한 연봉으로는 모시기가 쉽지 않을 뿐이다.
입학정원 축소를 통해 희소가치를 유지하려는 시도와 이에 동조하는 현재의 정책은 근시안적이다. 최근의 ‘오이시디 한국경제 보고서’는 한국의 의사 부족을 경고했다. 우리보다는 인구 대비 의사 수가 많은 일본(인구 1000명당 2.1명)도 기존의 의대 정원 억제책의 잘못을 시인했다. 고이즈미 정부는 의사 증원으로 정책목표를 수정했다. 민주당 정부도 의대 정원을 계속 늘리고 있다. 일본의사회도 협조하고 있다. 반면교사로 삼자.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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