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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국민의 기본권은 흥정대상이 아니다! / 안진걸

등록 2010-06-28 23:30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 야간집회금지조항 위헌제청 신청인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 야간집회금지조항 위헌제청 신청인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에서 ‘야간 옥외집회의 금지시간’을 규정하려던 여당의 의도가 일단 유예됐다. 그러나 불씨는 여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이번 집시법 개정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른 것이다. 그동안 집시법 10조는 야간집회에 대해서, 우리 헌법이 인정하지 않는 금지 및 허가제를 명시하고 있었다. 헌법은 집회에 대한 사전 허가는 허용하지 아니한다고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 2009년 헌재는 이를 위헌(헌법 불합치)이라고 판정했다. 헌법과 헌재 결정의 취지를 따른다면, 집시법 10조는 즉시 삭제되거나 실효되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허가제보다 더 개악된 ‘특정 시간대의 야간집회를 모조리 금지하는 야간집회 금지조항’을 신설하려 했다. 한나라당이 헌법적 기본권 보장 과제를 ‘허용시간 문제’(여전히 위헌적인, ‘집회에 대한 허가제’의 관점에 기반해)로 왜곡·변질시키고 있음이 잘 드러난다. 시민단체와 야당의 반대로 집시법 개정을 이번 국회에서 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집시법 10조는 자연스럽게 실효가 됐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이 문제를 결코 포기한 것으로는 보이지는 않아, 다음 정기국회부터 이 문제는 다시 불거질 공산이 크다.

한나라당과 경찰은 야간집회를 금지하지 않으면 밤마다 국민들이 폭도가 될 것이라는 주장을 유포하고 있다. 국민들을 모독하는 것이다. 설령 집시법 10조가 실효된다 해도 집시법과 형법 등의 여러 조항으로 집회에서의 일탈행위는 얼마든지 예방, 단속할 수 있다.

어떠한 인권이나 헌법적 기본권들이 낮과 밤에 차별을 받고 있는가. 지금 한나라당의 논리는 집회의 특수성을 생각한다 해도, 낮에는 인권과 생존권을 인정하겠는데, 밤 12시 이후에는 이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위헌인 허가제이던 것을, 더 위헌인 금지제로 바꾸는 것이기에 그 인식의 내용과 질이 더 나쁘다. 집회·비판·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은 그 자유와 권리에 관련된 시간, 장소, 형식, 내용, 방법, 인원에 대한 선택의 자유까지를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백번을 양보해서 심야시간대의 주거밀집지역 등의 ‘장소’를 제한하는 논의 정도는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국민들은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에 대해 (또는 다른 여러 가지 사안으로) 밤을 새워서 항의하는 철야 농성이나 철야 집회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동서고금의 역사에서도 그런 행동은 늘 존재해왔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제와 1주기 추모집회도 자정을 넘어서까지 진행됐다. 경건하고 평화로운 추모집회도 불법이 된다니 통탄할 일이다.

하나의 예를 더 들어보자. 일본의 식민지배를 합리화하고 한-일 관계에 대해서 망언을 일삼는 어떤 인사가 밤 12시부터 새벽 5시까지 한국에 입국하거나 출국하는 경우,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 국민들은 그러한 망언에 항의할 수 있어야 한다. 한나라당의 안대로라면, 이 역시 불법이 된다. 그런 경우의 가능성이 높지 않더라도 국민의 기본권은 그런 경우까지를 고려해서라도 완벽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이명박 정권과 경찰이 말로는 헌법을 존중하고, 집회의 자유를 인정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집회·표현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특히 비판과 이견에 대해서 적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적절한 설명일 것이다.


국민의 중대한 기본권에 대해 시간상의 차별과 제한을 두겠다는 발상은 근본적으로 부적절하다.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정권하의 통행금지(통금) 조항과 야간집회 금지 조항은 그 양태가 다르긴 하지만, 국민의 중대한 기본권을 압살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공당이라는 정당이, 민중의 지팡이라고 하는 공권력이 왜 이렇게 국민들을 못 믿고, 국민들의 기본권을 압살하지 못해서 안달이란 말인가. 제발 집시법 10조를 실효되도록 내버려두라.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 야간집회금지조항 위헌제청 신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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