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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창] 여성태학으로 오세요 / 박어진

등록 2010-07-02 20:25

박어진 서울셀렉션 기획실장
박어진 서울셀렉션 기획실장
친구 만나 떠들어 대며 밥 먹는 걸 평생 좋아하니 좋은 친구들이 한 보따리다. 그들에게 보고 배운 걸 어찌 말로 다할까? 55년 동안 살아온 내 생각과 느낌의 거의 모든 지적재산권을 그녀들에게 돌려야 할 정도로 나는 친구들에게서 배우며 성장했다. 바로 그 금쪽같은 친구들과 선후배들이 모였다. 세상을 바꿔보자는 생각에서다. 여러 번 고쳐 쓴 기획서와 긴 토론, 그렇게 작은 여성학교는 탄생하고 있다.

장소는 충남 공주 갑사 아랫마을에 있는 작고 정갈한 여관.

우선 7월 어느 주말, 2박3일 캠프 형식으로 20명 정도의 여성들이 참가한다. 첫 강좌인 ‘기쁨교실’의 공부는 그다지 빡세지 않다. 계곡을 따라 숲길을 걷고 가벼운 명상과 셀프 마사지, 체조를 한다. 아내, 엄마, 딸 또는 직장인이라는 배역을 해내느라 지친 자신을 되돌아보며 “나를 칭찬”하는 시간도 갖는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는 마인드힐링 기법을 이용해 자기 치유 능력을 이끌어 내도록 돕는 수업 및 실습시간도 있다. 내 존재에 대해 감사하기 훈련 등도 빼놓을 수 없다.

강사는 우리 모임에서 자체 조달한다는 원칙이다. 우리들 안에는 한의사, 의사, 언론인, 심신통합치유 전문가, 여행기획가, 법률가, 사회복지사, 엔지오 활동가, 교사, 사회학자, 요리연구가 등 없는 게 없다. 물론 필요에 따라 외부 초청인사도 섭외한다.

음식은 채식. 7곡 현미밥이나 누룽지탕, 견과류를 곁들인 샐러드와 도토리묵, 두부와 나물처럼 소화가 잘되는 유기농 식단으로 꾸려갈 작정이다. 등록금은 실비 수준으로 책정한다.

이름은 여성태학으로 지었다. 대학보다 큰 배움터이니, 대학이 가르쳐주지 않는, 큰 가르침을 찾아 나선 여성들을 초대하고 싶다는 뜻이다.

누구든 여성이면 환영이다. 남성 중심으로 운영되어온 세계의 한계를 이미 목격한 여성, 인간의 탐욕이 전 지구 자원과 생태계를 수탈하는 현실을 더 이상 두고 보지 않겠다는 여성, 지금보다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힘이 여성들 안에 있다고 믿는 모든 여성들을 환영한다. 국·영·수 시험성적으로 인간의 등급을 매기는 학교에 더는 내 아이를 보내지 않겠다는 각오를 한 엄마들도 대환영이다.

이런 생각이 아니라도 좋다. 20대든 40대든 60대든 나이에 상관없이 문득 멈춰 서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싶은 이들, 삶의 후반부를 새롭게 디자인하고 싶은 모든 여성들을 환영한다.

완경이라는 질풍노도 전환기를 홀로 헤쳐가는 여성들도 오면 좋겠다. 완경 이후의 생애 리모델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여성태학에서 속속 개설할 강좌 중에는 ‘굶지 않는 슬로푸드 다이어트’, ‘행복한 아이와 행복한 엄마 학교’, ‘갱년기 전략’, ‘가족간 평화 대화법’도 있다. 또 행복학교 만들기 여교사 워크숍도 기획하고 있다. 여기에 일방적 교습 같은 건 없다. 경험과 생각을 주고받으며 서로 배운다. 난상토론도 가능하다. 춤과 노래도 빼놓을 수 없다.

가만히 보면 여성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유능하다. 또 겉보기보다 훨씬 가진 게 많다. 자기 안에 잠자는 금광을 채굴하기로 마음을 먹기만 한다면 말이다. 우리 안의 힘을 과소평가하지 말자는 언니들의 합의에 의해 집단구성체인 여성태학이 탄생한 것처럼.

개교를 앞두고 회의가 잦아졌다. 학생 모집이 힘들지 않을까 살짝 걱정도 된다. 그래도 세상으로부터 받은 게 많은 우리들이 세상에 되돌려줄 그 무엇이 있다는 게 가슴 설렌다. 배워서 남 주는 기쁨이 이렇게 클 줄이야. 여성태학이 1년 후 또는 10년 후 어떤 형태로 진화할지 아무도 모른다. 시작은 약소하나 결과는 분명 창대할 것이다. 새 세상을 꿈꾸는 데 그치지 않고, 내 손으로 새 세상을 만들어 가기로 결정한 여성들, 나 자신을 바꾸는 게 바로 그 출발임을 깨달은 여성들, 바로 우리들이 아닌가? ‘가슴 뛰는 여성太학’, 개봉박두!

박어진 서울셀렉션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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