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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문화칼럼] 당신의 징후를 그저, 바라보다 / 이지현

등록 2010-07-02 20:31

이지현 영화평론가
이지현 영화평론가
<시>를 보고 나오면서 영화 속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논란의 중심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이었다. 소녀와 미자의 시점이 겹쳐지며 <아네스의 노래>가 낭송될 때, 어떤 이는 이를 미자의 자살로 읽었고, 다른 이는 그저 관념의 전이로만 말했다. 물론 답이 딱 떨어질 논의는 아니다. 하지만 죽음의 하향곡선 혹은 흐르는 ‘강’의 물결이 어떤 공통되는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는 데 이의를 제기한 이는 없었다.

영화와 사회의 관련성에 대한 일반론이 아니다. 다만 특정 영화의 경우, 개봉 시점에 따라 관객의 뇌리 속에서 ‘영화-사회’의 의외적 줄긋기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만약 이런 가정을 한다면 어떨까? <밀양>이 지금 개봉되었다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종교의 가치, 죽인 자가 스스로 구원을 이야기하는 아이러니가 현시점에서 새롭게 해석될 여지는 없을까? 심지어 영화 <밀양>의 어떤 면은 <시>보다 더 시의적절할 수 있어 보이는데 말이다.

징후(徵候), 나는 이 단어를 볼 때마다 약간은 두려운 기분이 든다. ‘징후가 나타났다’고 하는 것은 ‘이미 늦었다’라는 뜻을 어느 정도 포함한다. 때로 개봉할 영화가 사회를 적절히 반영하는 것도 징후의 뒤늦은 특성 탓이 크다. 예컨대 어떤 제작자와 감독들은 기획과 제작 단계에 소요되는 시간보다 더 일찍 사회를 예측하기도 한다. 그들의 날이 선 촉은 영화가 사회를 이끄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영화는 그 자체가 징후가 된다.

지난 1일 개봉한 미하엘 하네케의 <하얀 리본>이 그런 경우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 영화는 온갖 징후로 가득 찬 심리극이었다. 물론 징후에 대한 의견차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엔 공통적으로 1차 세계대전이 있고, 독일의 특수성이 있다. 문화계가 보여주는 경향이란 게 온전히 직접적일 수는 없고 일정의 왜곡 역시 감수해야 함을 생각하면, 이를테면 영화 속 하얀 리본이 상징하는 억압을 ‘경제 체계가 우리의 행복을 좌지우지하게 된 상황’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난 여기에 의외의 것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본 가판대 위 신문에 적혀 있던 ‘충동적이었던 박용하의 자살’이 그것이다. 사망의 징후가 발견되지 않아서 이상하다는 기사부터 시작해 징조가 있긴 한데 우리가 몰랐다는 추측성 글까지, 수많은 이야기가 그의 죽음을 통해 흘러나왔다. 이에 경찰은 사건을 정리하며 ‘충동’이란 수식어를 붙였다.

연예인 일련의 자살, 충동은 자못 징후와는 상반된다. 적어도 우리 시점에서 그의 죽음은 충동과 더 맞아 보이지만, 그럼에도 그 자신에게도 죽음이 충동적이었을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 ‘충동적 자살’이란 게 과연 있을 수나 있나? 아니, 적어도 당신 부친의 암 선고를 들은 직후부터 줄곧 죽음의 징후가 그를 따라다니지는 않았을까? 이 밖에도 자살의 원인이라 불릴 만한 다양한 요건들이 연일 인터넷상을 떠돈다. 해서 나는 묻고 싶다. 과연 <하얀 리본> 속 폭력의 징후들을 우린 일반화해 말할 수 있을까? 동시에 박용하란 배우의 죽음에 대해 우린 어떠어떠했다고 정형화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는 갔고, 장마는 시작되었다. 우리 사회에 퍼진 죽음의 망령은 여전히 우리를 헤치고 다니지만 이 역시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그다음은? 앞으로 나타날 징후를 마냥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징후는 모름지기 미리 발견되어야 하고 치유되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징후 본연의 역할이다.

이지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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