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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영포회보다 청와대가 문제다 / 손준현

등록 2010-07-04 21:18

손준현 사회부문 선임기자
손준현 사회부문 선임기자
까마귀도 고향 까마귀가 반갑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생각도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청와대 핵심 참모는 “공직사회에는 적당한 견제와 감시가 필요하다는 게 이 대통령의 생각이고, 포항 라인이 그런 역할을 해온 데 대해서는 어느 정도 평가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고 지난 3일치 <조선일보>는 전했다. 걱정스럽다. 청와대가 요즘 민간인을 불법으로 사찰한 이인규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 사건으로 속을 끓이고 있다는데도, 이 대통령은 도무지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야권에서 ‘영포게이트’라는 말을 입에 올릴 정도로, 이 사건은 이제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넘어 이 대통령의 동향인 ‘공직 내 사조직’이 국정을 쥐락펴락한 정권 차원 의혹사건으로 번지고 있다. 그 핵심에 포항·영일 출신 5급 이상 공직자 모임이라는 ‘영포회’가 있다. 이인규 실장은 영덕 출신이지만 포항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영포회 인맥으로 분류돼 왔다.

“우리의 영도자 이 대통령을 위해 힘껏 지원하는 열정을 가슴에 새기자.” 이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과 함께 ‘포항 라인’의 핵심으로 꼽히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말이다. 최 위원장이 2008년 11월26일 영포회 모임에서 한 발언은 당시 그 자체로도 정치적 파문이 적지 않았다.

정작 더 큰 문제는 최근 드러났다. 최 위원장이 그 말을 했던 바로 그해 같은 달에 영포회 회원들이 포함된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민간인을 불법으로 사찰한 내사자료를 경찰에 수사의뢰했다. 회사를 운영하던 그 민간인의 측근들을 불러 그 민간인이 회사를 포기하도록 압력을 넣은 뒤였다. 이유는 단지 그 민간인이 이광재 강원지사와 동향이라는 것뿐이다. 같은 시기에 일어난 두 사건에서 ‘포항 라인’의 생각과 행동은 ‘위’에서 ‘아래’까지 놀랍도록 일사불란했다.

‘포항 라인’은 이 대통령을 ‘힘껏 지원’하는 대가로 ‘정부의 퍼주기’를 듬뿍 챙긴 듯하다. 이들이 받은 인사특혜는 별도 자료가 없으니 논외로 치더라도, 당시 포항시장 말대로 “이렇게 물 좋은 때에 고향 발전을 못 시키면 죄인이 된다”, “어떻게 하는지 몰라도 예산이 쭉쭉 내려온다”는 정황은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다. 여기서 문제는 다시 청와대로 향한다. ‘포항 라인’의 견제와 감시 기능을 인정하는 태도는 이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를 끌고 가는 데 또다른 심각한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민과의 소통에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는 이 대통령은 이미 대대적 국정쇄신 요구를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이 ‘포항 라인’을 보는 시선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영포회 사건이 우후죽순처럼 고개를 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렇게 되면 국정동력을 잃고 레임덕을 재촉할 수도 있다는 비판이다.

같은 고향 출신이라는 카르텔이 ‘우리끼리의 성벽’을 높게 쌓고 ‘배타주의의 해자’를 깊게 판다는 점은 우리 사회의 오랜 고민이다. 하지만 단순한 고민을 넘어 ‘포항·영일 카르텔’처럼 다른 지역 출신에게 ‘당신은 이광재와 동향 평창 출신이 아니냐’며 한 개인을 철저히 파괴하는 마당이라면, 그 칼날은 오늘 평창이었다가, 내일은 부산, 광주, 대전으로 옮겨갈 수도 있음을 국민들은 익히 알고 있다.


“제 삶을 온전히 되돌려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다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지난주 불법사찰 피해자인 김종익씨의 집을 찾았다. 그는 공권력에 의해 30여년간 쌓아온 사회적 평판과 인간관계, 그리고 재산까지 박탈당했다. 청와대를 포함한 ‘공권력’이 이제 김씨의 요구에 대답할 차례다.

손준현 사회부문 선임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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