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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종석 칼럼] 북한 국민소득 통계 바로잡기

등록 2010-07-05 23:11수정 2010-07-06 11:18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북한 연구에서 사실(팩트)은 매우 중요하다. 국민의 북한 인식이 천차만별이며 그것이 때때로 심각한 사회갈등마저 일으키는 현실에서 사실 확인은 인식의 차이를 줄이는 첫번째 방법이다. 정부가 대북정책을 수립할 때도 이 사실은 핵심적인 고려요소가 된다.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정책은 현실적이지 못하며 실패 가능성도 그만큼 높다.

지난 6월 한국은행은 2009년 북한의 국민총소득을 우리돈으로 환산하여 28조6000억원, 1인당 국민총소득은 123만원으로 추계 발표하였다. 국민총소득은 남한의 37분의 1 수준이며 1인당 국민총소득은 남한의 18분의 1 정도라는 것이다. 이 지표들은 당연히 한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통계로 대접받는다.

그러나 이 통계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 한국은행도 “모든 지표는 북한 가격자료 등 기초자료의 입수가 곤란하여 남한의 가격, 부가가치율, 환율 등을 적용하여 산출”했다며 이를 인정하고 있다. 예컨대 북한의 피복공장에서 생산되어 북한 시장에 나온 의복류의 가치를 계산할 때, 북한의 물가가 아닌 남한 공장에서 생산되어 남한 시장에서 형성되는 의복류의 가격을 상정하여 가격을 매겼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북한에서는 10달러도 되지 않는 옷을 남한의 가치를 적용하여 50달러로 계산할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한국은행의 북한 국민소득 추정과 남북한 비교는 사실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은행은 ‘이들 지표를 여타 나라들과 직접 비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남북한 비교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들이 친절하게 남북한 비교수치까지 제시하고 있는 이 통계를 실제적인 수치로 받아들이는 것이 현실이다.

2006년 초 통일부 장관 취임 직후 나는 한국은행 관계자들에게 대북문제 책임 장관으로서 북한 국민소득을 제대로 평가할 것을 요구하였다. “지금이 탈북자 1만명 시대이고 최근 탈북자들도 상당수 있으므로 그분들로부터 물가정보 등을 수집할 수 있지 않으냐”며 재평가 작업을 유도했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어렵다는 답변이었다. 이에 통일부는 전문 학자들에게 수집 가능한 자료들을 제공하고 세계 각국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대강이라도 실제에 가까운 북한 국민소득을 산출해보도록 용역을 의뢰하였다.

연구결과 2005년 시장환율 기준 북한의 1인당 국민총소득은 최소 194달러, 최대 605달러, 평균 368∼389달러로 추정되었다. 이를 인구수로 곱한 총량 규모는 평균 84억∼89억달러로 추정되었다. 2006년 한국은행 추계의 35∼37%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남한과 비교해서 2006년 기준으로 국민총소득은 100분의 1, 1인당 국민총소득은 약 50분의 1에 해당했다. 국방비는 최대치로 잡아 북한 국민총소득의 20%로 본다면 17억달러 정도였다. 남한이 북한보다 최소 15배 이상의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엄청난 남북한 격차는 무엇을 의미할까? 상식적인 차원에서 이제 남북간의 체제대결이 끝났음을 뜻한다. 남한은 북한에 비해 압도적인 국방비를 지출하고 100배의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민주투쟁의 역사가 이룩한 주권재민의 민주주의 제도를 갖추고 있다. 반면에 북한은 미래가 불투명할 정도로 심각한 경제적 침체와 체제위기에 빠져 있다.

그런데 이 와중에 극우인사들은 북한 체제의 취약성으로 북한이 붕괴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김정일의 적화 남침을 우려한다. 남한에 수십만명의 김정일 동조세력이 있다며 그들의 타도를 외친다. 자신들이 보기에도 다 망한 김정일을 그렇게 많은 남한 국민이 추종한다는 게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는다. 북한은 때로는 ‘가장 허약한 적’으로, 때로는 ‘가장 강력한 적’으로, 아무런 충돌 없이 그들 안에 공존한다. 자기분열의 자가당착이다. 그러나 그들은 느끼지 못한다. 그것이 그들의 생존기반이기 때문이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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