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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금융위기 이후의 자본주의 / 김용기

등록 2010-07-06 23:54

김용기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
김용기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
금융위기 이후의 자본주의는 이전의 자본주의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지난 6월25일 미국에서 금융개혁법안(The Restoring American Financial Stability Act 2010)이 통과됐고,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질서 최고위급 논의기구로 부상한 주요 20개국(G20)이 4차례 회의를 마침에 따라 위기 이후 자본주의 변화의 향방을 가늠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요약해보면 위기 전 최고조에 달했던 시장근본주의적 태도와 금융 우위 경향이 상당부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자본주의는 본래 고정된 특징을 갖는 불변의 존재라기보다는 변화하는 상황에 대응하여 변형되고 진화하는 사회구조이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경제학자 아나톨 칼레츠키는 이번 금융위기로 자본주의가 네번째의 변혁을 맞이하고 있다고 말한다.

첫번째 자본주의는 1776년 미국의 독립부터 1932년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대통령 당선 시기까지 150년간 지속됐다.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 레세페르)로 불리는 첫번째 자본주의는, 경제와 정치는 철저하게 분리돼야 한다고 믿었다.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제국주의 전쟁 수행 재원 마련을 위한 징세, 국가 내의 섬유산업과 요먼(독립자영농민) 등 특정 집단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관세장벽을 세우는 것에 한정됐다.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 미국에서 발생한 대공황을 계기로 자본주의는 다음 단계로 접어든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정치적 경제적 트라우마(상처)로 고전적 자유방임적 자본주의는 폐기됐다. 뉴딜(New Deal),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 복지국가(Welfare State)라는 이름의 새로운 자본주의가 등장했다. 이 시기의 정부 역할에 대한 인식은 이전과 크게 달라져서 정부는 어머니같이 관대하고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금융시장에 대한 불신 속에서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에 관한 규제가 국제적으로 행해지게 되었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의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은 두번째 자본주의를 지배하던 케인스적 사고를 폐기시켰다.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의 자유시장 혁명으로 등장한 자본주의의 세번째 버전은 금융을 가장 우선시하는 시장근본주의적 사고가 특징이었다. 정부를 불신할 뿐 아니라 죄악시하고, 규제와 공공행정을 공공연하게 경멸하였다.

하지만 이번 금융위기를 계기로 금융 중심 시장주의의 문제점이 심각하게 노출됐다. 금융시장의 시장가격인 금리, 환율, 주가, 부동산 가격은 실물 상품의 가격과는 달리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미래에 벌어질 알 수 없는 사건에 대한 주관적 기대에 맞춰 움직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번째 자본주의를 뒷받침한 현대경제학은 여러가지 단순화와 가정을 통해 금융시장 가격에 대한 추정이 가능한 것처럼 가장했다. 이것이 시장근본주의적 사고의 배경이 됐다. 금융시장은 종종 흥분하고 결국 붐과 거품의 몰락을 가져오는 탐욕과 공포의 순환과정에 쉽게 굴복한다. 금융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은 경제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향후 새롭게 펼쳐질 네번째 자본주의는 세번째 자본주의의 폐해를 바로잡는 모습이 될 것이다. 특히 금융부문에 대한 대폭적인 손질과 규제가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금융 실패가 야기한 경제활동 전반과 고용의 부진에 일정한 책임을 질 것으로 보인다.

탐욕과 공포의 순환과정 자체는 병적이고 비도덕적인 것이라 할 수는 없다. 이것은 자연선택이라 불리는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우리 뇌에 자리잡은 아주 본질적인 감정이다. 탐욕은 물질적 발전을 위한 원동력이 되며 공포는 그것을 제어하는 대항력이다. 하지만 금융의 시계추가 과도하게 탐욕에서 공포로 반전될 때 야기되는 엄청난 혼란과 손실을 막고 완화시키기 위해 정부가 시장에 개입을 하게 되고 지금이 바로 그 시기이다.


김용기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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