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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창] 요즘 내가 잠 못 이루는 이유 / 박범신

등록 2010-07-16 19:26

박범신 작가·명지대 교수
박범신 작가·명지대 교수
날도 더운데, 내 과오가 아닌 국가권력의 과오 때문에 요즘은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대통령을 비판만 해도 붙잡아가던 시절의 ‘전설’이 역사의 서랍을 열고 세상 속으로 다시 부활해 올 것 같은 공포감도 든다. 지난번 지방자치 선거의 여론조사가 왜 틀렸는지 알 만하다. 사람들은 다시 적어도 국가권력에 대해 말할 때 옛날처럼 속내를 감추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모양이다.

‘양천경찰서 피의자 고문사건’ 보도에서, 입에 재갈을 물린 채 ‘날개꺾기’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돋았던 소름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난데없이 불거져 나온 ‘총리실 민간인 사찰’ 사건은 들을수록 가슴에 맷돌을 얹어놓은 듯 마음이 무겁다. 연유도 모른 채 직장을 잃고 공포에 질려 일본으로까지 도피를 해야 했던 당사자의 뿌리뽑힌 삶을,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가 남의 일로 치부하고 말겠는가. 더구나 사찰한 곳이 경찰이나 정보를 다루는 국가기관도 아니라니, 더 모골이 송연하다. 총리실이다. 대학총장에 학자 출신 총리도 이 문제에 대해 오불관언하는 걸 보면, 미상불 총리실 산하이면서 총리께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게 확실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각 부처는 어떨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혹시 행안부나 더 나아가 문화부, 보건복지부, 교육부엔 이런 데가 없을까 하는 고약한 상상까지 든다. 믿을 데가 없다. 도대체 총리실 소속으로 되어 있는 기관에서 저지른 일을 총리실이 정말 알지 못하고 있었다면 우리 정부의 객관적 조직체계가 실종됐다는 말이 되거니와, 그것 자체가 공포스럽지 않을 수 없다. 조직의 공식 라인에서 모르는 일을 하고 있었다면 저들은 일종의 ‘사조직’이다. ‘사조직’이 겨우 ‘노사모의 핵심’이라는 오해 때문에 멀쩡한 국민의 삶을 뿌리뽑는 나라에서 우리가 살고 있었단 말인가.

광화문 복원을 무리하게 앞당겨 준공하려 한다거나, 4대강을 살린다면서 경우에 따라선 하루 15시간 넘게 작업한다는 식의 ‘속도전’의 보도 등도 무섭긴 마찬가지다. 내달리는 속도에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모든 일에서 ‘속도전’을 펴면 사람이든 짐승이든 무조건 다치거나 죽거나 하는 이가 나올 수밖에 없다. 생명을 살리기보다 생명을 죽이는 것이 된다. 티베트 사람들처럼 집을 지을 때조차 개미 한 마리라도 다칠까보아 확대경을 들고 들여다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가 지금 당하는 사회의 제반 그늘과 불편부당한 일도 생각해보면 경제개발의 속도전에서 나온 부작용이다. 무리한 속도는 그런 의미에서 필연적으로 반생명 반문화의 황폐한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이미 국회를 통과한 ‘아동성폭력 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도 그렇다. 아동성폭력은 진실로 영원히 뿌리뽑아야 할 반인륜적 범죄이다. 이 법은 요컨대 아동성폭력 범죄자에게 약물을 강제로 주입해 성욕을 화학적으로 거세하자는 법안이다. 정파싸움에 바쁜 의원님들이 서둘러 이 법을 통과시킨 걸 보면 아동성폭력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혹시 표심을 일부 잃을지라도, 약물을 강제하는 반인간적 방법이 최선인가라고 반문하는 국회의원을 나는 보고 싶고, 갖고 싶다. 아동성폭력은 단지 ‘성욕’의 문제가 아니다. 이 병적인 범죄는 아동포르노가 난무하고 ‘왕따’가 일상적으로 생겨나는, 실패한 사람은 어디에도 나설 수 없는 사회전반적인 황폐한 환경의 뒷받침을 받고 있다. 그 모든 황폐한 환경은 눈감고 약물만 강제로 투입하면 아동성폭력이 정말 근절된다고 보는가. 실험실에서 모르모트를 다루듯 약물로 성욕을 거세하기만 하면 해결된다는 발상은 단순한 임기응변식 처방에 불과하다. 반문화적이다. 깊이있는 찬반토론도 없이 이런 법을 일사불란 처리하는 속도전도 무섭기는 마찬가지다. 마음 놓고 단꿈을 꾸게 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나라가 나서서 나의 불면을 부채질하니 ‘사람 환장하겠다’.

박범신 작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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