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신 서울시의원 전 문화연대 공동대표
서울시교육청이 금년 2학기부터 학교체벌을 금지하기로 했다. 일부에서는 이를 학생인권조례의 신호탄이라고 한다. 학교체벌에 대해 서울시교육청이 일방적으로 체벌금지라는 과감한 결정을 한 이유는 최근 ‘오장풍 사건’ 때문이다. 서울 모 초등학교 교사인 오아무개씨는 바람에 어린 학생들을 날려 보내는 비장의 무기가 있어 일명 오장풍으로 불렸다. 대강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가? 어린 학생들을 손바닥으로 교실 바닥에 패대기치는 장면 말이다. 오래된 무협영화에서 등장한 장풍은 힘과 정의를 앞세우는 무림 고수의 세계에서 나온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장풍을 날렸다면, 노약자를 구하기 위해 더 큰 장풍의 소유자인 서울시교육청의 곽노현 교육감이 당연 자신의 탁월한 장풍을 날려야 하지 않겠는가? 영화 같은 현실이다.
나는 중고교 때 성적 때문에 체벌하는 교사, 무조건 때리고 보고 머리채를 잡아 마룻바닥에 패대기치는 일명 싸이코 교사를 겪은 적이 있었다. 우리는 공부의 노예가 되어 성적과 씨름을 했다. 나를 포함한 내 친구들의 심정은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였다. 10대 때 인생 고민은커녕 인생의 스승도 별로 만나보지 못한 채 3류 교육에 3류 학생들이 되어 탕진한 것이다. 교사는 학과 전문성과 강의의 기법에서 앞설 뿐이고 학생과 교사는 인격적으로 평등하나 그것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학교에는 윗분과 아랫것이 있어 교장은 교사보다 윗분이고 학생은 교사보다 아랫것이며 하급생은 상급생보다 아랫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서열의식이 철저하게 반영된 것이 체벌이다. 교육적 체벌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허구에 불과하다. 연구자들은 체벌의 후유증으로 공격, 파괴적 행동, 자학, 반사회적 행동 및 비행, 자살, 자신감 결여, 자아기능 손상, 위축, 대인관계 기피, 불면증, 급성불안 반응, 심한 공황상태, 성장 발달 지연, 언어 발달의 장애, 집중력 장애, 지적 장애(정신지체) 등을 들고 있다. 2009년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 연구와 비교한 바에 따르면, 한국 어린이와 청소년(전국 초등학교 4학년~고등학교 2학년 학생 5천명)이 느끼는 행복감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다.
학생이 자존감을 잃어 병들어 가는데 한국 사회의 미래가 온전할 수 있는가? 잘못하면 매를 맞는데 무슨 자존감이고 행복인가? 매 맞는 아내가 행복한가? 매 맞는 학생이 행복할 수 있는가? 상대에 대한 반발과 증오만 있을 뿐이다.
체벌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잘못된 법령 때문이다. ‘함께하는 교육 시민모임’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몇차례나 체벌 토론회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나온 의견을 종합해 보면, 초중등교육법 18조 1항: 교육상 필요한 때 법령 및 학칙이 정하는 바에 의해 학생을 징계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지도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고, 시행령 31조 7항: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하지 않는 훈육·훈계 등의 방법으로 지도해야 한다. 즉 모든 순간 체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서울시교육감이 체벌금지 지침을 과감히 내리는 것은 교육자치선거에서 그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들의 시대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체벌 문제를 말하면 교권을 들먹인다. 교사가 학생을 때려서 교사 권리가 유지되는 것이라면, 그런 교권은 무의미하다. 학생 인권이 올라가면 교권이 떨어질 것이란 반발도 지나치다. 현재 학생체벌도 가능하고 학생인권조례도 없는데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면 무한경쟁과 입시교육 등 그 원인을 다른 데서 찾아야지 체벌을 허용하고, 학생 인권만 트집잡으면 되는가? 학생 인권과 교사 인권은 반비례하지 않는다. 이번 서울시교육청의 조치에 대해 엠비(MB) 정부 교육과학기술부가 상위법을 지켰네 못 지켰네 트집을 잡을 것이 아니다. 체벌금지에 대한 법 개정을 해야 한다. 3류 교사가 3류 방식으로 3류 시민을 키워내는 것은 이젠 멈추어야 한다.
김명신 서울시의원 전 문화연대 공동대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