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순 대기자
지난주 여름휴가를 이용해 백두산에 처음 다녀왔다. 지인들이 백두산 종주 산행을 한다고 해 묻어갔다. 중국이 관광 개발을 본격적으로 추진함에 따라 백두산 천지로 가는 길은 북, 서, 남쪽이 모두 열렸다. 한국에서 가려면 조선족 자치주 주도인 연길이나 창춘, 선양을 거쳐 이동을 한다.
우리 일행은 연길에서 안도현 이도백하를 거쳐 먼저 서백두 지역인 서파로 갔다. 우리 돈으로 3만3천원 정도의 입장료를 내고 공원 안을 돌아다니는 대형 버스를 타면 길을 굽이굽이 돌아 거의 2200m 정도의 고지까지 오른다. 1236계단, 900m를 걸으면 천지에 이른다는 표시판이 있는데 이곳이 산행 기점이다. 아침 이른 시간임에도 남녀노소가 뒤섞여 북적댔다. 네다섯 살의 어린이부터 60대의 노인들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천지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내려간다.
우리는 여기서 천지를 오른쪽으로 끼고 종주산행을 시작해 북백두 쪽인 북파로 내려왔다. 종주를 하려면 입장료의 7~8배가 되는 입산료를 별도로 내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한족 산악안내인이 하산하기까지 전 과정의 안내를 한다. 우리 일행의 산악안내인이 입은 녹색 군복 같은 옷에는 미해군 특수부대라는 영어 문자가 쓰여 있었다. 개방의 열기야 중국의 다른 곳에서도 피부로 느낀 적이 있지만, 미군 특수부대 차림의 중국인과 함께 백두산 고산지대를 걷게 된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뒤늦게 백두산 산행에 합류한 초보자로서 감상의 일단을 말한다면 첫째는 어디에서나 우리말이 들려온다는 점이다. 연간 백두산 관람객은 연간 170만명인데 이 중 한국인이 10만명을 차지한다고 한다. 외국인 가운데 동남아의 화교나 대만인을 제외하면 외국인의 압도적 다수는 한국인이다. 하루 평균 270여명이 오는 셈이니 백두산과 천지에 대한 한국인들의 동경과 정서적 친근감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다. 특히 9~10시간이 걸리는 종주코스의 참가자는 한국인이라고 단정해도 거의 틀리지 않다.
둘째는 중국의 관광지 개발사업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점이다. 10여년 전부터 이곳을 방문했던 한국인들은 교통, 숙박편의 시설이 눈을 의심할 정도로 개선됐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 일행은 본격 산행을 하기 전날 1400m의 산 중턱에 새로 마련됐다는 야영장에서 일박을 했다. 대형 텐트에는 전기장판과 이불이 비치돼 있어 밤에도 한기를 느낄 수 없었다. 스키 등 겨울스포츠의 최적지임을 선전하는 포스터도 자주 눈에 띄었다. 1년 중 절반이 눈이 온다고 한다. 한여름인데도 천지 주변의 골짜기 곳곳에 잔설이 남아 있었고 때로는 빙하처럼 보이는 엄청난 덩어리도 있었다.
셋째, 2400~2500m의 고산 지대 어디에서도 휴대폰이 터졌다. 국내에서 깊은 산에 들어가면 전지가 급격하게 소모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아예 휴대폰을 꺼놓아야 했던 나의 경험으로서는 놀라운 일이었다. 그만큼 백두산이 광활한 고원지대 위에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퍼져 있다는 얘기가 된다.
천지를 잠깐 보고 내려왔건 종주산행을 했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왜 우리의 정신적 고향을 찾으면서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느냐는 것이다. 2000년 6·15 선언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을 때 남과 북은 백두산과 한라산의 교차관광 실시에 합의했다. 하지만 선택된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 합의는 실현조차 되지 않았다. 이제는 금강산 관광마저 두절된 상태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는 북한 퍼주기론에서 출발하고 있다. 하지만 백두산 관광의 현상은 중국 퍼주기로만 보인다. 우리 겨레라면 모두 가보고 싶어 할 백두산 순례길, 언제까지 이렇게 할 것인가?
김효순 대기자 hyoskim@hani.co.kr
김효순 대기자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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