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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추억 속의 동북아 균형자 / 김근식

등록 2010-07-27 20:42

김근식 경남대 교수·정치학
김근식 경남대 교수·정치학
사상 최대의 한-미 연합훈련으로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천안함을 공격한 북한에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한국과 미국은 ‘불굴의 의지’ 작전을 수행하고 북한은 공식 성명을 통해 핵 억제력에 의한 ‘보복성전’을 다짐하고 나섰다. 중국 역시 연일 합동훈련을 맹비난하고 있다. 한-미가 한편에 서고 북-중이 한편에 서면서 동북아에 때아닌 신냉전 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유엔 안보리에서, 아세안지역포럼에서 한-미와 북-중이 사사건건 대결하는 모습은 과거 냉전시대에 익숙했던 진영간 대결의 상징이다.

훈련에 참가한 조지워싱턴 항모의 크기와 위용에 감탄할 수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배가 몰고 올 동북아의 긴장과 대결의 씨앗이다. 탈냉전 이후 조금씩 평화와 협력의 흐름이 형성되던 한반도와 동북아가 천안함 이후 하루아침에 냉전시대 대결장으로 변해버렸음은 분명 역사적 퇴행이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평화 촉진자임을 자임하며 북핵문제에서 북-미 대화와 협상을 매개하고 주도했던 대한민국의 처지는 이제 6자회담 재개마저 거부한 채 대북 강경압박으로 동북아 평화를 깨뜨리는 평화 위협자가 되어 있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동북아 균형자론을 언급하면서 한국 외교는 한바탕 홍역을 앓은 적이 있다. 균형자라는 개념의 혼선은 있었지만 21세기 탈냉전의 동북아 질서에서 한국 외교가 지향해야 할 과제를 제기한 점은 평가할 만한 일이었다. 중-일간 패권 경쟁의 유동적 미래를 고려할 때 남북관계의 진전이라는 한반도 평화 지향성을 토대로 동북아에서 평화와 협력의 촉진자 역할을 고민한 것은 분명 새롭고 참신한 문제의식이었다. 당시 동북아 균형자론은 냉전이 해체됐지만 아직 탈냉전의 새로운 질서가 확립되지 않은 동북아에서 대결과 반목이 아니라 평화와 공존의 협력적 질서를 만드는 데 한국이 고유한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는 적극적 의지의 반영이었다. 특히 화해협력의 남북관계를 토대로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킴으로써 동북아 평화에 기여하겠다는 한국적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실제로 당시 한국은 남북관계라는 지렛대를 통해 한반도 평화를 확보하고 동북아의 협력을 추동해낼 수 있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평화에 힘입어 북-미 고위급 교차방문이 성사되고 북-미 관계가 급진전했음은 분명 남북관계의 힘이 동북아의 평화질서를 추동한 대표적 사례였다. 2005년 한국 특사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난 6·17 면담으로 6자회담 재개에 돌파구가 열리고 2차 북핵 위기 이후 처음으로 9·19 공동성명이 도출될 수 있었음도 남북관계가 동북아 협력을 이끌어낸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명박 정부에게 동북아 균형자는 옛 추억일 뿐이다. 남북관계는 망실된 지 오래고 한반도 평화는 지속적으로 위협받고 있다. 천안함 사태는 파탄난 남북관계에 더하여 한-미와 북-중 사이에 최고조의 대결상황을 구조화시키고 있다. 한국이 앞장서서 동북아의 평화와 협력을 추동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 이명박 정부는 신냉전의 최선봉이 되어 동북아의 대결과 대립을 심화시키고 있을 뿐이다.

동북아 균형자는 남북관계를 통해 한반도 평화를 진전시키고 이 평화의 힘으로 동북아의 협력과 공동번영을 안내하려는 평화지향적 외교노선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감정적 북한 혼내주기 정서에 갇힌 채 대북 대결 노선을 고집하고 한-미 동맹을 이유로 미국까지 동참시킴으로써 동북아 평화를 흔들어놓고 있다. 그 결과는 북한 굴복이 아니라 한반도 긴장 고조와 미-중 대결 심화로 나타났고 이제 동북아는 탈냉전 이후 최대의 군사적 대결 지역이 되어 있다. 남북관계에 토대한 동북아 평화 구조가 남북 적대를 앞세운 동북아 대결 구조로 한순간에 전환됨을 보면서 우리는 동북아 균형자론이라는 옛 추억을 씁쓸하게 떠올리게 된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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