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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요즘 ‘하나회 놀음’에 맞설 장태완은 / 김재홍

등록 2010-07-29 22:32

김재홍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김재홍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1979년 12월12일 군사반란에 가담한 장교들이 확인된 것은 밤 9시가 넘어서였다.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소장이 참모장 김기택 준장에게서 경복궁의 수경사 30경비단에 모여 있는 ‘반란군’ 장교들의 명단이 적힌 쪽지를 건네받았다.

“1군단장 황영시 중장, 수도군단장 차규헌 중장, 국방부 군수차관보 유학성 중장, 보안사령관 전두환 소장, 9사단장 노태우 소장, 20사단장 박준병 소장, 71방어사단장 백운택 준장, 1공수여단장 박희도 준장, 3공수여단장 최세창 준장, 5공수여단장 장기오 준장, 30단장 장세동 대령, 33단장 김진영 대령, 수경사 헌병단장 조홍 대령…”

중장 세명을 제외하고 전두환 소장 이하는 모두 하나회 장교들이었다. “나쁜 놈들, 정치군인으로 안하무인격으로 놀더니 이젠 모반까지 해…” 그는 분노를 억제하지 못했다. 자신의 휘하부대가 군사반란의 모의 본부인데다, 소속 장교 다수가 가담한 것을 알고는 이성을 잃었다.

전화로 30단장 장세동 대령을 찾았다. 전화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유학성 중장이었다. “유 선배님, 남의 부대에 들어와서 지금 무엇하자는 겁니까.” 이내 그는 선전포고를 하고 만다. “이 반란군 놈들, 꼼짝 말고 거기 있거라. 내 전차와 포를 갖고 가서 모조리 대갈통을 날려버릴 테니.” 불같은 그의 성미를 잘 아는 군사반란의 지휘부는 더욱 철저한 모의와 행동에 들어간다.

지난 26일 타계한 장태완 장군은 12·12 군사반란을 막으려 했던 가장 명확한 현장 증인이었다. 그는 평생 야전군인이었다. 10·26 사건 뒤 정승화 육참총장 등 군 수뇌부는 향후 벌어질 정치군인들의 행태를 어느 정도 예상했다. 균형추 구실을 할 야전통이 있어야 했다. 그해 1월 박정희 대통령이 보안사령관에 하나회의 수장인 전두환 소장을 앉혀 놓았기 때문에 그의 독주를 견제할 적임자가 필요했다. 수경사령관의 적임자로 장태완 소장을 골랐다.

하나회의 병력 동원에 장 소장은 탱크와 병력을 보내 진압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수경사 장교 450여명 중 자리를 지키는 사람은 60여명뿐이었다. 대부분 하나회라는 사조직의 지령에 따라 반란군에 가담하거나 자리를 이탈한 상황이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반인륜적이고 비극적인 쿠데타 사건인 12·12는 특전사령부에서 정점에 이른다. 다음날 새벽 1시 반경, 보안사령관의 밀명을 실행 못해 초조해하던 3공수여단장이 부하인 박모 대대장을 불렀다. “할 수 없다. 설득이 안 되니… 신속하게 사령부를 평정하라.” 박 중령이 지휘하는 특공조가 사령관실에 쳐들어가 M16을 난사했다. 특전사령관 정병주 소장과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이 함께 총상을 입고 쓰러졌다. 특공조는 정 사령관을 데려가 병원에 입원시켰지만 김 소령은 현장에 방치됐다가 곧 숨지고 말았다.

정 소장은 직속 부하들로부터 배신당한 좌절감에 시달리다 야산에서 목매 생을 마감했다. 김 소령의 부인 또한 몇 년 뒤 투신했다. 장태완 소장의 대학생 외아들도 아버지의 비운을 고민하다가 82년 낙동강변의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아들은 서울대 자연대에 수석입학한 촉망받는 수재였다.


12·12 사건에서 명령자와 전달자, 그리고 행동대장은 모두 하나회 선후배였다. 이들은 정규 지휘계통과 직속 상관보다도 자신이 가담한 사조직 하나회의 지령에 복종했다. 요즘 국민적 공분을 불러온 국가권력의 사유화야말로 그런 ‘하나회 놀음’과 다름없다. 검찰 수사가 진행중인 정부의 민간인 사찰 사건도 권력 실세들이 벌인 하나회 놀음 아닌가. 이른바 ‘영포회’나 ‘선진국민연대 출신’의 하나회 놀음은 엄정하게 조사돼야 한다.

하나회 현상은 우리 사회 도처에서 발견된다. 야당의 당권파, 언론의 사주 족벌에 빌붙은 기생족, 기업의 회장 비서실과 구조조정본부, 또 지역의 토호세력 등 이들의 하나회 행태를 척결하지 않는 한 선진사회는 오지 않는다.

김재홍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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