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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MB, 친서민인가 반서민인가 / 정남기

등록 2010-08-05 19:56

정남기  논설위원
정남기 논설위원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이 갑자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친서민 정책을 외쳐댄다. 장관들은 양극화 해소가 살길이라며 장단을 맞춘다. 대기업들은 바빠졌다. 경영진들이 여기저기를 탐문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고 다닌다.

뒷이야기는 눈 감고도 알 수 있다. 삼성이나 현대차가 뭔가를 내놓아야 한다. 양극화 해소를 위한 기금이나 새로운 일자리 창출 방안이 될 것이다. 그러면 다른 대기업들이 뒤를 따르는 게 정해진 순서다. 특별한 예측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겪었던 일이니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친기업을 강조하던 정부가 갑자기 달라졌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야권은 돌아선 민심을 붙잡기 위해 흉내만 내는 것 아니냐는 의심 어린 시선을 보낸다. 여권이나 보수진영은 대통령이 좌파 포퓰리즘에 빠졌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진짜 이유가 무엇이든 서민을 위해 일하겠다는 대통령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것은 언제나 옳은 일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의 서민행보 뒤에는 ‘제왕적 대통령’이란 어두운 그림자가 겹쳐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제2금융권의 대출금리가 높다는 한마디에 캐피털사들은 찍소리도 못하고 금리를 5%포인트나 내렸다. 재벌기업들은 투자와 신입사원 채용을 얼마나 늘릴 것인지를 놓고 눈치를 살피고 있다. 엄포 한번 하고 손목 한번 비트니까 알아서 기는 모양새다.

정부 말처럼 대기업이 혼자 잘해서 최고의 실적을 올리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들은 초기부터 국민의 희생과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성장해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금융위기 이후의 저금리, 고환율, 감세 정책은 대기업이 쾌속항진할 수 있는 든든한 기반을 마련해줬다. 성장과 분배의 문제를 시장 원리에만 맡길 수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다만 대통령 한마디에 대기업들이 줄줄이 선심성 대책을 풀어놓는 방식은 곤란하다. 그런 식의 친서민 정책은 오래가지 못한다. 기껏해야 1~2년이다. 차기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고 정권의 힘이 빠질 때가 되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다. 친서민 정책을 제대로 하려면 패러다임의 전환과 사회구조의 개혁이 뒤따라야 한다. 수출 대기업 위주의 편향된 경제정책, 성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낡은 사고방식 등이 그것이다. 고환율 정책도 그런 것들 가운데 하나다. 고환율 정책은 내수에 기반을 둔 중소기업과 일반 국민들을 쥐어짜 수출 대기업에 막대한 부를 안겨주는 효과가 있다. ‘친서민’이 아니라 오히려 ‘반서민’이라고 할 만한 정책이지만 정부는 아직까지도 이를 고수하고 있다.

해법은 중소기업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고용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중소기업이 풀려야 고용이 늘고 소득이 향상돼 내수 기반이 확충된다. 어차피 대기업은 고용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지난해 대학 졸업자 54만7000여명 가운데 대기업 취업자는 3만9000여명에 불과했다. 대기업을 아무리 압박해봤자 소용없다. 채용 인원은 계속 줄고 있다. 친서민 정책이라고 떡 하나 더 얹어줄 게 아니라 서민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대부분 고용문제와 직결돼 있다. 졸업을 하고도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청년실업자, 꿈과 희망이 없는 월급 100만원의 비정규직, 소비 여력이라곤 거의 없는 박봉의 중소기업 직원, 기업에서 밀려나 사실상 반실업 상태에 있는 자영업자. 양극화 과정에서 추락하는 군상들의 모습이다. 이들의 운명을 가른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고용의 형태다. 특히 취업의 첫발을 어디서 내딛느냐가 중요하다. 한번 직장에서 떨려나면 재진입이 힘든 대기업 고용의 폐쇄성 때문이다. 패자부활전이 불가능한 사회구조가 양극화를 더욱 부추기는 셈이다. 섣부른 친서민 정책으로 양극화를 해결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남기 논설위원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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