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논설위원
6·2 지방선거 이후 친정부 언론들이 야당 지방자치단체장 및 진보성향 교육감들을 향해 집요하게 물고늘어진 게 있다. 이른바 ‘코드 인사’와 전임자 정책 뒤집기다. ‘노무현 시대를 닮은 야권 시도지사들의 코드인사’ 따위의 날선 제목들이 연일 신문지면을 장식했다. “세종시 문제 때와는 달리 전임자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이 한다”는 질타도 이어졌다.
야권의 오만함을 부각시키는 데는 이만큼 좋은 소재도 없다. 국민들 사이에 “야당도 별수 없다”든가 “끼리끼리 해먹기는 모든 권력이 마찬가지”라는 따위의 냉소주의를 확산시키는 데도 성공했다. 그것이 바로 보수언론들이 노린 목표인지도 모른다.
물귀신 작전도 동원된다. 그동안 진보진영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코드 인사와 정책 뒤집기를 비판했으니 ‘장군멍군’ 아니냐는 얘기다. 이런 식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허무한 논쟁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돼버린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최소한의 기준과 원칙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예를 들어 ‘서울교육감, 인사위 10명 중 9명 전교조·좌파단체 임명’ 등의 비판을 살펴보자. 선거에서 이긴 세력이 자기와 철학·이념이 같은 사람들을 대거 기용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이른바 ‘좌파언론’에서도 이명박 정부에 좌파를 발탁하지 않는다고 나무란 적은 없다. 엊그제 발표된 개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보수 안에서도 시야를 넓혀 인재들을 발탁할 법한데 왜 특정 지역에 편중된 인사, 돌려막기식 회전문 인사를 되풀이하느냐고 비판했을지는 몰라도, 좌우를 골고루 기용해 ‘거국내각’을 만들라고 요구하지는 않았다. 보수언론들도 이런 상식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안면몰수하고 공격하니 그 배짱이 놀랍다.
심지어 <조선일보>는 서울시교육청 인사를 비판하는 사설에서 ‘좌파 분류 기준’의 하나로 신문기고 활동도 포함시켜 “좌파신문에 교육칼럼을 쓰던 교육평론가”도 문제삼았다. 좌파신문은 <한겨레>를, 교육평론가는 이범씨를 지칭하는 듯한데, 참으로 유치하다. 특정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차라리 그가 쓴 글을 집중적으로 분석해 문제를 제기하는 게 옳다.
인사 문제에서 더 세심히 접근해야 할 사안은 임기가 보장된 기관장들의 처리 문제다. 결론부터 말하면 야당도 이들을 강압적으로 몰아내려 해서는 안 된다. 협박, 모욕주기, 뒷조사 등 온갖 비열한 수단을 동원해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사람들을 쫓아낸 이명박 정부의 행태야말로 역겹기 짝이 없다. 야권이 혹시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너희도 했는데 우리만 안 하면 손해’라는 유혹에 빠진다면 실망스럽다. 최소한 이명박 정부와 그런 점에서는 달라야 한다.
전임 정부 정책 뒤집기를 비판하면서 보수언론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더욱 낯간지럽다. 갑자기 ‘행정의 일관성’이니 ‘예산낭비 우려’니 하는 따위의 우국충정이 넘쳐난다. 세종시 수정안 때는 입도 뻥긋하지 않던 용어들이다. 이런 비판에 대해 그쪽에서는 “세종시 수정안 반대론자들은 어땠는데”라는 물귀신 작전으로 나올 게 분명하다. 그러나 정책적 사안을 그처럼 단순화해 평면비교할 수 없음은 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자신들이 문제삼는 경전철 재검토 문제만 해도 애초 수요 예측에 문제가 있었음은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이 글의 목적은 단순히 보수언론의 자가당착적 태도를 비판하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이제는 우리 사회가 이런 쟁점들에 대해 다수가 공감하는 합리적 기준과 원칙을 만들 때가 됐다는 생각에서다. 권력교체가 일상사가 된 현실에서 언제까지 ‘네가 그렇게 했으니 나도 똑같이 한다’라든가 ‘너희도 비판할 자격이 없다’는 따위의 진흙탕 싸움을 계속할 것인가.
어차피 철학과 지향점이 다른 세력들 간에 같은 코드를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코드에도 품격이 있어야 한다. 비판을 하든 옹호를 하든 원칙과 기준을 가진 코드를 펼쳤으면 한다.
김종구 논설위원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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