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북한이 9일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수역으로 110여발의 해안포를 발사했다. 이 가운데 10여발이 북방한계선 남쪽 1~2㎞ 백령도 북방 해상에 떨어졌다고 한다. 군 당국은 북한의 해안포 사격을 “정전협정을 위반한 중대한 도발”로 규정하고 북한에 강력 항의했다. 이런 상황 전개는 ‘대규모의 무력시위에 나선 한-미 동맹의 목적이 과연 달성되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양국은 군사 훈련의 목적이 강력한 대북 억제력을 과시해 “북한의 도발 의지”를 꺾는 데 있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북한의 해안포 사격 훈련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러한 목적 달성에는 이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이번에는 10여발이 북방한계선 이남에 떨어졌다고 하는데, 이는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한-미 동맹의 ‘무력시위’가 ‘역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적 성찰이 필요한 까닭이다. 무력시위라는 ‘수단’이 북한의 도발을 억제한다는 ‘목적’ 달성에 적절하지 않다면 다른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극히 상식적인 얘기지만, ‘안보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북핵은 ‘억제용’이라는 주장을 한·미 양국이 수용하지 않는다. 한-미 동맹이 항공모함 등 최강의 전력을 투입해 실시하고 있는 무력시위를 아무리 ‘방어용’이라고 주장해도 북한은 이를 “북침전쟁”으로 간주한다. 마찬가지로 미국이 중국의 군사력 현대화에 강한 우려를 갖고 있듯이, 중국은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강화되고 있는 미국 주도의 동아시아 동맹체제를 자신에 대한 군사적 봉쇄로 해석한다.
이처럼 상호간에 주장과 주장이 충돌하고 억제와 억제가 맞닥뜨리게 되면, 안보딜레마는 더욱 심화된다. 군비경쟁과 군사적 긴장은 더욱 격화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않는다면, 긴장의 수위는 일촉즉발까지 치닫고, 우발적 무력충돌과 확전의 위험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나의 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조처가 상대방의 반작용을 야기한다. 여기에 또 강경하게 대응하다 보면 오히려 나의 안보를 위태롭게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안보 이론을 되새겨야 할 시점인 것이다.
문제는 갈등의 당사국들인 남, 북, 미, 중이 ‘치킨게임’도 불사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 있다. 특히 9월 서해에서 한-미 연합훈련이 시작되면, 당사국들 사이의 치킨게임은 정점에 달할 것이다. 미국은 조지워싱턴호를 파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중국은 좌시하지 않겠다고 한다.
북한이 9일 한국군의 대잠수함 훈련이 끝나자마자, 해안포 사격 훈련을 실시한 것도 이 훈련에 대한 사전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해 훈련이 강행되면, 북한은 해안포는 물론이고 지대함 미사일까지 동원해 맞대응에 나설 공산이 크다. 중국도 외교적 항의와 대응 군사 훈련뿐만 아니라, 미국 항모를 겨냥한 실탄 사격 훈련도 염두에 둘 것이다. 최근 중국이 미국 항모를 겨냥한 대함 탄도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소식도 예사롭지 않다. 자칫 서해가 남, 북, 미, 중 4개국의 포연으로 뒤덮이면서 전쟁 위기가 최고조로 치달을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또다시 이명박 정부에게 묻게 되고, 호소하게 된다. 이러한 전쟁 위기로 가장 손해 보는 당사자가 과연 누구냐고? 매달 실시하는 한-미 연합훈련이 과연 대한민국의 안보를 튼튼히 하고 있느냐고? 북한을 두고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호전적인 집단”이라고 해놓고선, 무력시위로 겁을 주면 북한이 정말 온순해질 것이라고 믿느냐고? 미-중 간의 신냉전을 자초하고 또 이에 휘말리면서 과연 대한민국의 미래를 희망차게 설계할 수 있느냐고?
상대방의 차와 정면충돌을 향해 질주하는 운전사를 두고 ‘용기 있다’고 칭찬하지 않는다. 살기 위해 핸들을 꺾는다고 ‘비겁하다’ 욕하지도 않는다. 더구나 그 차 안에 무고한 사람들이 타고 있다면, 운전사가 택해야 할 선택은 자명하지 않겠는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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