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수/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 논란이 다시 불거질 조짐이다. 국토해양부가 일부 건설사와 함께 디티아이 규제 완화에 따른 부동산 시장 상황 변화를 예측하는 모의실험을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에서 길을 잃었다는 질타가 연일 아우성이다. 대중매체들은 연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자 때문에 꿈을 잃었다는 서민들의 서럽고 고단한 풍경을 실어 나른다.
비싼 집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진 ‘하우스 푸어’라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트위터에서는 지금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투기 전력자이기 때문에 정부와 업계의 모종의 실험은 단추를 잘못 끼우는 것이라는 비난이 빠르게 옮겨지고 있다. 만약 그 종국이 디티아이 규제 완화나 양도세 면제 등으로 가시화되면 결국 가진 사람들을 돕는 꼴이라는 것이다.
조금 다른 생각을 가져볼 수도 있겠다. 그동안의 대안과는 다른 방식이며, 명가의 보도처럼 쓰였던 규제 완화나 감세와는 아주 다른 방법일 수 있겠다. 생뚱맞은 아이디어에 그칠 수도 있을 법한 생각은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해 시중에 차고 넘친다는 자금을 활용하되 공적 신뢰가 있는 정부나 공공기관의 중개를 통해 실질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돕는 대안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우선 정부는 공공기관이나 은행 등을 통해 ‘하우스 푸어’들이 팔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보유주택이나 신축주택 혹은 신규분양 아파트를 최근 부동산 거래 신고액이나 계약분양가 등으로 매집하여 비축하는 방안을 강구한다.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시중의 유동자금을 모은 기관은 진정한 ‘하우스 푸어’들이 처분하지 못한 주택을 매입한다. 매도자들은 그 자금을 활용해 기존 대출금의 전부 혹은 일부를 상환하거나 신규 아파트 중도금이나 잔금 등을 납입하도록 한다. 이를 통해 이자 부담을 크게 줄여 가계부채 총액을 없애거나 줄여 주거안정을 도모한다. 주택을 비축한 자금 운용 기관은 주택 실수요자들을 위해 비축한 주택을 매입가 혹은 그 이상의 가격으로 되판다. 매입가 이상으로 매도할 경우 그 차액의 일정 비율을 원매도자와 적정 비율로 배분하는 것이다.
이때 ‘하우스 푸어’들에게는 차액의 배분이 이루어질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주택비축 및 자금운용 기관에 자신이 보유한 주택의 매각 여부를 결정할 때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그들의 실체와 진정성이 확인된다. 이 과정을 통해 ‘하우스 푸어’를 가장한 투기자들의 잘못된 푸념을 차단하는 동시에 특혜 여부를 둘러싼 소모적인 논란도 줄일 수 있다. 시중자금을 주택비축기관에 투자한 사람들 역시 자신의 판단에 따라 투자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투자처에 비해 높은 투자이익을 낼 수도 있다. 물론 자금 확보가 문제일 터이다. 이를 위한 방안의 하나로 검토할 수 있는 것은 자금 투자자에게 발생하는 이익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것이다.
세심한 정책적 손질과 보완, 그리고 신중한 검토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빚을 부풀리는 인위적인 경기부양이니 부자들을 위한 감세니 하는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있다. 입주 지연으로 인한 현금 유동성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는 건설사의 숨통도 트이게 할 수 있다. 내 집 마련의 꿈마저 산산조각이 났다고 절망하는 진짜 ‘하우스 푸어’들의 걱정도 덜어줄 수 있다. 나아가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는 시중 부동자금의 상당 부분을 사회공헌을 위한 방편으로 끌어올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긍정적이고 순기능적인 정책적 효과는 ‘하우스 푸어’가 현재의 부동산 시장에 얼마나 존재하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다. 가면을 쓴 채 부동산 가격 앙등을 부추겨 부동산불패 신화를 재현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진짜 어려움을 겪는 국민들을 구분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손을 내밀자는 것이다.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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