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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그건 능력이 아니다 / 여현호

등록 2010-08-23 20:04

여현호  논설위원
여현호 논설위원
요 며칠 계속된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면서 놀라운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어떻게 저들은 저렇게도 재산 모으기에 바지런하고, 또 하나같이 법망을 잘 피해갔을까. 그러면서도 높은 자리에 턱턱 지명되는 것은 무슨 재주일까.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대표적이다. 그는 1993년 이후 지금까지 자신과 부인 명의로 17차례나 부동산 매매를 했다고 한다. 거래는 부동산가격 폭등기인 99년부터 2006년 사이에 집중됐다. 그 가운데는 아파트 분양권을 산 값 그대로 2년 뒤에 되팔았다는 이해 못할 거래도 있고, 6억여원의 시세차익을 남긴 오피스텔 거래의 등기를 1년 뒤로 미뤄 양도세를 아낀 거래도 있다. 일반 실수요자라기보다 탈법도 서슴지 않는 ‘꾼’의 솜씨다.

신 후보자 부인의 위장취업 의혹도 달리 보면 그 수완이 놀랍다. 위장취업을 했다는 2004년과 2007년은 신 후보자가 직장을 옮기거나, 퇴사 뒤 선거캠프에서 일하는 바람에 고정수입이 없던 때다. 그 회사들이 신 후보자 부인을 알지도 못했다니, 아마 신 후보자 때문에 월급이 나왔을 것이다. 퇴직 이후의 버팀목을 그렇게 쉽게 마련한 이면에 다른 거래는 혹시 없었을까.

다른 후보자들도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대부분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두 차례 이상의 위장전입이나 논문 표절 따위 이런저런 편법과 불법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김태호 총리 후보자는 도지사로 있던 동안 재산을 10배 불렸다고 신고했고,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는 장관 취임 전에 로펌에서 15개월 동안에 5억원에 가까운 자문료를 받았다. 그렇게 번 것이 능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후보자들에게 놀랍고 의심스런 대목이 많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지명을 철회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이 대통령은 이미 논란에 아랑곳하지 않고 능력을 앞세우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는 민간인 불법사찰 파문과 국정전횡 논란의 주역인 박영준 지식경제부 차관을 두고 ‘왕차관’이 어디 있느냐며 “나는 일 잘하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공개적으로 감쌌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불법사찰에 연루된 의혹을 받는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도 남다르다고 전한다. 그의 일솜씨와 충성심이 남다르다는 이유에서다.

그리 보면 이 대통령이 생각하는 ‘능력’은, 이런저런 리스크를 무릅쓰고 대통령의 뜻대로 목표를 달성해내는 충성심을 뜻하는 듯하다. 온갖 논란에도 고향 사람이나 동창들, 이미 충성심이 검증된 몇몇 측근들만 고집스럽게 쓰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번 개각 역시 그런 능력을 앞세운다는 점에선 마찬가지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게 능력일까.

일을 하다 보면 지켜야 할 원칙이나 규정, 배려해야 할 다른 가치가 있게 마련이다. 이를 어기거나 무시했을 경우엔 불법이 되거나 사회적 갈등과 충돌이 빚어질 수 있다. 그런 게 리스크일 것이다. 영포라인의 민간인·정치인 사찰 파문이 바로 그 때문에 빚어졌다고 봐야 한다. 그런 리스크를 아랑곳하지 않는 것은 비극을 부르는 맹목일 뿐, 능력은 아니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기술이 능력일 수도 없다. 이재훈 후보자는 공직에 있으면서도 쪽방촌 투기에까지 나선 이유에 대해 노후 대비라고 변명했다. 신 후보자의 부동산 투기도 월급쟁이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서 시작됐을 것이다.


공교롭게 이 대통령은 이제 반환점을 돌았다. 그는 ‘전임자들과 다르다’고 주장했지만, 그라고 해서 크게 다르진 않을 게다. 친인척이나 측근 비리로 레임덕에 빠질 위험도 있고, 후임 구도도 제뜻대로만 되진 않을 것이다. 이미 힘이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권의 미래가 불투명해지면 ‘딴생각’을 하는 이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기준과 원칙보다 자신의 앞가림을 앞세운 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또 한번 잇속을 앞세우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 대통령이 나중이 아니라 지금 당장 고위공직자 임명 기준을 엄격히 적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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