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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김대중-김정일 회담이 생각난다 / 김재홍

등록 2010-08-25 20:44

김재홍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김재홍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김대중 자서전>을 다 읽었다. 두 권짜리 1400여쪽을 읽는 데 시간이 많이 들었지만 얻는 게 많았다. 정치학도이며 언론인으로서 객관적인 입장에 서서 보려고 노력했다. 어떻게 보아도 그의 삶은 드라마라 할 만하다. 정치 이전에 더 본질적인 인간승리라고 해야 들어맞을 것 같다.

자서전은 알려진 것 중 상당부분이 왜곡됐음을 깨닫게 해준다. 1997년 대통령선거 후보들의 텔레비전 합동토론이 방영된 다음날도 나는 그런 시대적 왜곡을 느꼈다. 어느 인사가 이렇게 말했다. “그 양반 웃기도 하던데….” 독재정권의 오랜 정치공작이 그의 이미지를 ‘머리에 뿔 난 강성 좌파’로 만들어놓은 증거였다.

그의 자서전이 후대에 건네준 지혜라면 무엇보다도 한반도 평화와 민족통일의 길이다. 특히 현 정권이 배워야 할 정책 철학이 바로 평화적인 남북관계일 것이다. 최근 북쪽이 남북정상회담을 원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른바 ‘임태희 접촉’이 드러나기도 했다. 임 대통령실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후보 및 당선자 비서실장 출신으로 정권 실세다. 북쪽이 정상회담을 추진하기 위한 창구로 찍었을 법하다. 문제는 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전에 비공개 접촉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나는 이것으로 현 정권의 남북정상회담 추진은 물건너갔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를 극복하려면 굉장한 출혈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을 보도한 매체가 친여 언론이기 때문에 일부러 흘린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 무언가 하고 있다는 표시를 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 정권 아래서 남북관계는 파탄 상태이다. 그래서 잃은 게 너무 많다는 비판이 대두하자 면피가 필요했을 터다.

남북정상회담은 김대중 정부가 정책 일관성과 인내심을 가졌기에 얻을 수 있는 역사적 성과였다. 지금 정권의 최대 실정인 남북관계 파탄으로 말미암아 한반도를 둘러싸고 때 지난 냉전이 다시 드리워지고 있다. 김대중-김정일 회담이 간절히 생각나는 이유이다. 한-미 군사훈련에 대한 중국의 강한 반발도 예사롭지 않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도 김-김 회담이 그 이후 10년간 동북아 평화를 보장했다고 하지 않는가.

그의 서거가 남긴 또하나의 중요한 의미는 한국 정치지도자의 세대교체라 할 수 있다. 그는 해방 후 한국 정치사에서 제3세대에 속한다. 정당 지도자로 볼 때 김영삼, 김종필, 이회창 총재 등과 함께 민주화 세대이다. 그 앞의 제2세대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있다. 군사쿠데타 세대이다. 제1세대는 이승만, 김구, 신익희, 조병옥, 장면 등 일제하 독립운동 세대이다.

1~3세대 지도자들은 모두 카리스마적인 권위를 구사했다. 독립운동이나 군사쿠데타나 민주화 투쟁을 목숨 걸고 했기 때문에 보통사람과는 다른 위신이 있었다. 물론 쿠데타는 정통성 면에서 다른 두 경우에 비견할 바 아니다. ‘공포의 권위’라고나 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대통령 선거도 정책 공약을 살펴보고 국민이 선택했다기보다는 그런 권위와 위세가 더 작용했다.

이제는 정당의 최고 지도자를 ‘총재’라고 부르지 않는다. 동료들 중 맨 앞에 선다는 의미의 ‘대표’라는 칭호로 통일됐다. 총재 세대의 끝인 제3세대가 교체됐는데도 요즘 정치는 군사쿠데타 세대의 권위주의를 답습하고 있다.


정치지도자의 세대교체가 제대로 되지 않을 때 신세대 유권자가 전면에 나서는 것이 우리의 정치사적 경험이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은 원로세대라면 애국주의에 따랐다. 4·19와 5·16, 유신을 경험한 세대는 특히 자유민주주의 신봉자들이다. 그러나 민중운동을 함께 한 80년 5·18 세대와 그 뒤의 인터넷 세대는 다르다. 정치권에 들어간 5·18 세대는 크게 퇴색했다는 평가다. 인터넷을 통해 엄청난 촛불시위를 조직해본 누리꾼들이 신세대 역할에 나선 지 오래다. 이들이 구시대적 권위주의 정치를 어떻게 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김재홍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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