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기고] 죽은 맹모의 사회 / 이진순

등록 2010-08-27 20:24

이진순 미국 올드도미니언대 교수
이진순 미국 올드도미니언대 교수
권위적 학교교육을 비판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는 쫓겨나는 주인공 키팅 선생(로빈 윌리엄스)을 향해 학생들이 책상에 올라가 “캡틴, 마이 캡틴!”이라고 울부짖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권위와 복종의 상징인 책상을 밟고 올라서서 첫인사를 던졌던 키팅에게, 그 가르침을 잊지 않겠노라는 제자들의 뜨거운 화답이자 존경에 찬 헌사이다. 정작 내 가슴을 더욱 후벼 팠던 것은 그 마지막 장면에서조차 고개 수그린 채 이도 저도 못하는 나머지 학생들이었다. 빨리 그 순간이 지나가기만 기다린 채 고개 숙인 그 교실의 학생들은 일상에 쫓기며 이런저런 이유로 주어진 삶의 틀을 부수지 못하는 우리네 장삼이사들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인사청문회가 또다시 위장전입, 투기, 탈세, 위장취업 등으로 도배됐다. 기득권 세력은 이야기한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있느냐?” 너희들은 그만한 흠이 없느냐, 죄 없는 놈 있으면 돌 던지라는 반격이다. “자식 가진 부모의 심정으로 이해하라”고도 한다. 맹모삼천이 이들에겐 큰 방패막이이다. 맹자 엄마가 살아 있었다면 당장에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을 것이다. 맹자 엄마는 위장전입이 아니라 실제로 이사를 했다고 우스갯소리로 받아치지만, 이 위장전입에 관한 한 반론의 질은 현저히 떨어진다.

“위법인 건 알지만, 부모 마음으로 어쩔 수 없이 그랬다”고 달려들면 심란해진다. “부모 마음”을 붙들고 늘어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락없이 인질이 된다. “자식 가진 죄로” 고개 숙이는 이들에 대한 동정론도 무시할 수 없다. 위장전입의 변이나, 그것을 비판하고 성토하는 반론이나 공히 구차함을 면치 못한다. “나도 할 수만 있으면 좋은 학군에 보내고 싶었지만 능력이 없어 못하고 위법이라 못했다. 근데 니들만…” 하는 분노와 억울함, 동경과 질시, 선망과 자괴감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위장전입을 부모의 과욕이 빚은 사소한 흠결 정도로 치부하는 이들과 정면승부를 벌이려면, “그렇게 자식 교육 시켜서 뭘 가르치려 하느냐, 그런 방식으로 세습되는 부와 학벌과 연고가 우리 아이들 모두를 황폐하게 한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책상을 밟고 일어서지 못한 절반의 학생들처럼, 내 안에도 “부모 욕심”을 가장한 찌질한 속물근성이 남아 있는 한 이 문제는 그리 단칼에 깔끔하고 명쾌하게 정리될 것 같지 않다.

맹자 엄마가 맹자를 위해서 한 것이 이사만은 분명 아니었을 터, 부박한 내 지식으로 맹자 엄마가 평소에 맹자를 어떻게 가르쳤을지 궁금할 뿐이다. 맹모는 죽고, ‘삼천’(三遷) 신화에 열광하는 부모들만 남아 있으니 이래서 어느 세월에 맹자가 나오겠나 싶다.

모든 부모가 그렇겠지만 우리 부부의 바람은 아이를 “행복한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다. 행복할 줄 아는 것도 체험과 훈련이 필요하다. 행복해지는 법을 스스로 느끼고 배우게 하겠다고 매번 다짐하지만, 한편에서는 “일단 경쟁력이 있어야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쉽사리 지워지질 않는다. 도리질을 치고 나도 돌아서면 또 악마의 속삭임처럼 “이러다 내 아이만 뒤떨어지는 건 아닐까?” 불안해진다. 탄식하던 차에, 한국에서 이제 막 사춘기에 들어선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친구가 메일을 보내왔다. “아이한테 설득이나 훈계하려고 하지 말고 제 뜻대로 하도록 믿고 기다려줘 봐. 지금은 힘들겠지만 그래야 너도 나중에 덜 힘들 거야. 먼저 애 키운 엄마의 뼈아픈 충고이니 명심하시압.”

나보다 먼저 아이들을 키우면서 비슷한 마음고생을 겪고, “무엇보다도 자식의 행복이 우선이라서” 그들을 믿고 기다려주기로 했다고 말하는 친구들은 내게 하늘 같은 선배들이다. 그들의 용기와 결단에 진정 어린 존경을 보낸다. 나보다 먼저 책상 위에 올라서서 “캡틴, 마이 캡틴”을 외치는 깨어 있는 부모들을 다시 생각한다. 조금 미적거리고 꾸물대더라도 언젠가는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그렇게 책상을 밟고 당당하게 올라서지 않을까. 나도 그들 중의 하나이고 싶다.


이진순 미국 올드도미니언대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