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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농산물 수급은 시장 맡기고 정부는 지원·감시를

등록 2010-08-29 17:36수정 2010-08-29 21:12

농업 불변생산액(부가 가치)과 실질농업소득의 괴리
농업 불변생산액(부가 가치)과 실질농업소득의 괴리
FTA 이행땐 실질소득 감소예상
수출산업화 정책은 현실과 괴리
농가의 투자·혁신여력 키워줘야
소득보전직불제 확대도 검토를
[싱크탱크 맞대면] ‘MB농정’ 어떻게 변해야 하나

정부는 네덜란드 및 뉴질랜드 농업을 모델로 보조금 개혁, 농업의 수출산업화, 더 나아가 성장주도 산업으로의 변신을 비전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농정 방향은 오해와 착각에서 비롯한 것이다.

농업이 국민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도 안 되는데 우리 사회에서 항상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자유무역협정(FTA) 때마다 격렬한 반대시위로 정치사회적 쟁점이 되더니, 최근엔 쌀 재고가 늘어나고 값이 떨어져 난리다. 도대체 우리나라 농업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농업문제는 무엇보다 농가실질소득이 아직도 1990년대 초 수준에 머무는 가운데 5분위 소득비율이 95년에는 6.3배였으나 2008년에는 9.4배로 늘어나 계층간 소득격차가 도시부문(5분위 비율 5.3)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상위 소득계층의 분포는 감소하고 하위 소득계층일수록 분포가 늘어나는 하방집중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상위 20% 계층을 포함한 전 계층에서 실질소득이 감소하고 있다. 농가소득이 최근에 감소한 것은, 농외소득은 늘어났지만 농업소득이 급격히 감소하였기 때문이다. 양극화가 심화된 것도 실질농업소득이 최상위보다 최하위 계층에서 네 배나 빨리 감소했기 때문이다. 왜 농업소득이 이처럼 무너지고 있는 것인가?

지난 25년간 실질농업소득 및 불변농업생산액(부가가치)의 변화를 보면(그래프 참조), 1995년까지는 농업소득과 농업생산액이 거의 비슷하게 변화했으나, 95년 이후에는 둘 사이의 격차가 급격히 확대된다. 이와 같이 성장과 소득의 괴리현상이 나타난 것은 교역조건이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95년 이후 농산물 가격은 11% 상승한 데 비해 투입재 가격은 41%나 상승하여 경영여건이 악화된데다 소비자물가는 33% 상승하여 실질소득을 감소시켰던 것이다. 앞으로 한-미,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 등이 이행되기 시작하면 교역조건의 악화, 성장과 소득의 괴리현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농정과제는 이러한 농업소득의 악화 구조를 어떻게 차단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네덜란드 및 뉴질랜드 농업을 모델로 보조금 개혁, 농업 외부의 물적·인적자본 유치, 이를 통한 대규모 유통회사 및 농기업 설립, 이들에 의한 농업의 수출산업화, 더 나아가 성장주도 산업으로의 변신을 비전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비전과 농정 방향은 다음과 같은 오해와 착각에서 비롯한 것이다.

첫째, 우리나라 농업의 존재이유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 농업은 이제 국내총생산의 3%도 안 되어 ‘시멘트 콘크리트’ 산업보다 규모가 작은 산업이다. 설령 연평균 1~2% 정도인 농업부문의 성장률을 두 배로 높여도 전체 경제성장률이 0.1%포인트도 높아지지 못해 국민경제 성장을 주도하기는커녕 국민이 알아차리지도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농업은 무엇인가?


식품은 우리의 건강을 결정하는 첫째 요소이다. 다양하고 맛있고 안전하여야 하며, 그런 소비자의 요구가 수입농산물만으로는 충족될 수 없다. 또 우리는 쾌적한 여가·휴양·거주의 공간을 원하며 이런 요구를 도시공간이 모두 충족시킬 수 없다. 그렇기에 농업과 농촌이 다른 산업 그리고 도시지역과 함께 균형을 이루어 존재하는 것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필수적이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압축성장의 결과 아직도 170여만명이 농업에 취업하고 있다. 그들 중 60%는 60살이 넘어 다른 선택이 없다. 이들이 농사일을 잃으면 사회보호 대상자가 단박에 몇 배로 늘어난다. 그것은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둘째, 뉴질랜드와 네덜란드 농업을 우리나라의 모델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17세기부터 다른 작물 재배가 불가능했던 해안 간척지를 기반으로 한 낙농업이 기간 수출산업으로 발전했다. 뉴질랜드 역시 신개척지를 기반으로 발전한 면양산업이 경제를 떠받치는 기간산업이자 핵심 수출산업이었다. 80년대의 농업개혁은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되었던 환율을 일시에 높여 수출농산물의 농가 수취가격을 높이는 대신 생산을 왜곡하던 보조금은 철폐해, 결국 농가의 경영여건을 개선하려는 것이었다. 요컨대 우리나라 농업과 전혀 다른 역사적 배경과 여건에서 처음부터 수출산업으로 발전해온 뉴질랜드와 네덜란드 농업은 우리나라의 모델이 되기 어렵다.

셋째, 농업에서의 정부 역할에 대한 오해가 있다. 농정개혁이란 정책수단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시장의 역할을 재조정하는 것이다. 농정은 항상 농업생산 및 유통의 주체, 방법 등을 정부가 정하고 그렇게 되도록 이끌어 간다는 설계주의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왔다. 그러나 농업생산과 유통은 기본적으로 시장참여자의 영리적 판단과 경쟁에 의해 결정돼야 하며, 정부 역할은 시장이 원활히 작동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감시하는 데 있다. 쇠고기 표시제에 대한 단속을 강화한 결과 둔갑을 방지하여 한우산업의 부가가치를 1조원 이상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 대표적이다. 마찬가지로 정부가 수출용 농산물 생산을 지원하기보다 국내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를 확실히 담보할 수 있는 조처를 취하고, 농가의 생산비용 절감을 지원한다고 나서기보다 투입재의 수입제도와 시장의 경쟁구조를 개선하는 일에 나서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시장개방 시대에 불가결한 또 한가지 정부 역할은 가격하락의 충격을 완화하는 것이다. 소득보전직불제도가 그 전형이다. 그런데 소득보전직불제를 ‘나누어먹기’라고 생각하는 오해가 있다. 시장개방이 확대되는 상황에서는 농축산물의 소비자 가치를 높이는 상품화와 마케팅이 제일 중요하지만, 이것은 농가와 시장의 몫이다. 정부는 농산물가격 하락의 일부를 보전해주는 소득보전직불제를 마련하여 농업경영체가 시장개방 속에서도 투자와 혁신을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문제는 이와 같은 소득보전직불제가 생산유인이 되어 과잉생산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쌀이 이런 문제에 빠져 있다. 사실 20세기 선진국 농정은 가격하락의 충격을 방지하기 위한 지원과 농산물 수급 균형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고뇌의 연속이었다. 그런 고뇌의 결과 도달한 결론은 첫째, 가격은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되어 수급 균형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둘째, 가격이 하락하는 경우에는 하락분의 일부를 농가에 직접 보전하되 생산유인 효과가 가장 적은 이른바 ‘비연계’(디커플링) 방식으로 하자는 것이다. 즉 당년 재배면적과 관계없이 애초 약정된 면적을 기준으로 보전액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당면한 쌀 문제도 이 틀에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정환 GS&J인스티튜트 이사장

[싱크탱크 맞대면] ‘MB농정’ 어떻게 변해야 하나|‘경쟁 강조’ 기업농 중심 정책 재검토해야

※ ‘싱크탱크 맞대면’은 한국 사회 과제에 대한 정책대안을 고민하는 연구기관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만들어집니다. 다양한 정책현안들에 대한 기관의 연구성과를 원고지 10장 분량의 간결한 글로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두뇌집단이 내놓은 제안이나 자료에 대한 문제제기와 대안제시도 좋습니다. 문의와 원고는 한겨레경제연구소(heri@hani.co.kr)로 보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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