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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기후 게이트’ 넘어 소통으로 / 조홍섭

등록 2010-09-09 21:26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전세계의 환경기자들이 모여 수다를 떨었다. 요즘 날씨가 왜 이 모양이냐며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건기가 절정이어야 할 8월에 대홍수가 났다며 인도네시아 기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일본 언론인은 올여름 더위로 밭의 수박이 다 녹아내렸다며 식탁에 오른 수박을 반가워했다. 화제는 기후변화 기사가 왜 ‘안 먹히느냐’로 이어졌다.

지난 1~4일 중국 상하이에서 ‘기후변화와 언론’을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 참가했다. 주중 영국문화원이 세계의 중견 환경기자들을 엑스포가 열리고 있는 상하이로 불러모은 것이다. 기후변화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국가간 협상은 지지부진한데도 언론의 보도는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는 위기감이 모임을 연 동기의 하나였다.

실제로 패디 쿨터 옥스퍼드대 미디어전문가는 “세계의 기후변화 보도 건수가 코펜하겐 회의까지 폭발적으로 늘다가 그 직후 그야말로 붕괴해 회복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관련 그래프를 제시했다. 그 배경엔 미국의 소극적 태도, 잇따른 ‘기후 게이트’, 기대를 모았던 코펜하겐 총회의 실패, 지난겨울의 이상한파 등이 놓여 있다.

회의에선 기후변화 문제를 다루는 언론의 관행이 도마에 올랐다. 마크 플러리 세계과학기자연맹 사무총장은 “기후변화 보도는 지난 10년 동안 미국 언론의 최대 실수로 기록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과학적 논의 자체를 부정하는 주장을 과잉 대변하는 ‘균형의 함정’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 결과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자는 여론이 형성되지 않았고 정부가 강력한 정책을 펴도록 압박하지도 못했다.

기후과학자와 언론인 사이의 소통도 삐걱거렸다. 특히 코펜하겐 총회 직전엔 기후과학의 신뢰를 뒤흔든 이른바 ‘기후 게이트’로 기후변화 보도는 더욱 움츠러들었다.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학의 기후연구소에서 해킹된 전자우편 내용이 공개되면서 “기후과학자들이 기록을 의도적으로 폐기하고, 온도 감소 데이터를 숨겼으며, 비판자의 논문이 게재되지 못하도록 막았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또 비슷한 시기에 히말라야의 빙하가 2035년 이전에 사라질 것이란 기후변화정부간위원회(IPCC)의 2007년 보고서가 잘못됐다는 보도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 사태를 보는 언론과 과학계에는 온도차가 있었다. 기후과학자인 데이비드 바이너 영국문화원 기후변화사업 책임자는 “청문회 결과 연구자들이 데이터를 조작했거나 비판적 논문을 가로막은 증거가 없음이 드러났다”며 “기후 게이트에도 기후변화에 관한 결론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물론 연구 부정이나 ‘뻥튀기’를 감시하는 것은 과학기자의 본령에 속한다. ‘히말라야 게이트’를 폭로한 팔라바 바글라 <뉴델리 텔레비전> 과학편집장은 위원회의 라젠드라 파차우리 의장을 인터뷰한 화면을 회의장에서 소개했다. 파차우리 의장은 히말라야의 빙하가 실제론 커지고 있다는 인도 환경산림부의 조사결과를 들이대자 “이건 과학이 아니고 여론 폭탄”이라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명백한 증거 앞에서 정부간위원회는 올 1월 빙하의 후퇴 속도를 잘못 추정했다며 유감의 뜻을 밝혔다. 문제는 파차우리 의장의 태도다. 그는 지난 7월 “과학자들은 언론과 거리를 두라”고 충고했다. 바글라 편집장은 “파차우리는 과학자와 언론인의 소통이 기후변화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고 있다”며 “다음달 부산에서 열리는 기후변화정부간위원회 총회에서 그가 어떻게 개혁과 사임 압력을 견디나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이번 심포지엄에는 독일·영국·노르웨이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인도·짐바브웨 등 개도국 기자들이 머리를 맞댔고, 과학과 언론, 선진국과 개도국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소통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내년 상반기까지 온실가스 감축의 짐을 어떻게 나눠 질지 결정해야 할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적 합의를 위한 소통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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