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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문화칼럼] 우리 시대 작가는 무엇인가? / 전성태

등록 2010-09-10 20:05

전성태 소설가
전성태 소설가
최근 두 군데에서 열린 문학 토론회에 참석했다. 새삼 확인했지만 우리 시대의 문학 담론은 ‘문학과 정치’였다. ‘문학과 정치’라는 주제로 원고를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참석자들 대부분이 이 문제를 개진했다.

‘문학과 정치’ 담론은 기획의 산물이라기보다 작가들 일반이 가진 시대감각일 뿐 아니라 작가들이 실존적으로 직면한 고민이다. 이 담론은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요구한다.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반론과 비판보다 의견 개진이 많은 이유도 주제가 지당해서라기보다 목하 작가들이 글 쓰는 자로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유를 따져가지 않으면 안 되는 불편한 시대에 살고 있어서다.

당장 엠비(MB)정권이 작가들의 심연을 흔들어놓았다. 정치적 반대로 몰아붙이는 엠비정권의 정책과 행태들이 작가들이 지닌 본질적인 문제들을 건드리고 있다. 가치의 전도, 허위와 위선, 언어의 훼손이 이처럼 적나라하고 뻔뻔한 시대도 드물었다. 작가들은 문학적 진실들이 낭만과 몽상으로 떨어진 자리에서 무기력과 분노를 느낀다. 정권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용산참사와 4대강 사업, 뉴타운 건설 현장에 나간 많은 문인들이 소위 믿고 싶어 하는 ‘운동권들’만이 아니다.

집회장에 서는 게 겸연쩍고, 당위성과 목도한 진실을 언어화하는 일 사이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책상과 광장을 오가며 문학의 자율성, 미의식, 그리고 운동성을 곡진하게 질문하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윤리적 질문이 죽순처럼 솟고 있는 것이다. 이 정권은 작가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문학사의 복판에 새겨질 이 시대의 흉측한 자화상은 두고두고 뼈아플 것이다.

한편으로 작가들은 바야흐로 신자유주의 체제를 몸소 겪고 있다. 문학출판시장이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편입되면서 작가들이 지나치게 소비되고 있다. 출판사들이 장편소설로 출판시장 침체의 출구를 찾으면서 무한경쟁 체제에 돌입했다. 대형 출판사들은 작가들을 쌍끌이어선처럼 거두고 있다. 갓 등단한 작가들을 선점해 일부 작가의 경우 서너 권 이상 계약한 사례도 있다. 어느 출판사도 이 경쟁에서 물러설 수 없는 형국이다.

내 계산으로 신인작가가 서너 권의 작품집을 출간하려면 십년은 족히 공력을 들여야 할 것이다. 요즘 신인들은 셈법이 다른 모양이다. 아마 줄기차게 써내서 3, 4년 만에 원고 빚을 갚을지 모른다. 그리고 계약금이 몇달이나마 창작에 매진할 수 있을 만큼 넉넉한 것도 아니다. 신인작가들은 생존이라는 위기감에서, 혹은 인정받았다는 자족감에서 계약서를 쓰고 있는지 모른다. 이런 현상을 지켜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과연 출판사들은 신인작가들이 잘 성장하리라 믿는 것일까? 혹시 투자한 열 명 중에 한두 명이라도 건지게 되면 성공이라고 믿는 건 아닐까?

작가들이 출판시장에서 소비되는 지금의 상황은 매우 위태롭다. 저간의 문학 위기가 출판시장의 위기였다면 생산자로서 작가가 위기를 맞고 있다. 시쳇말로 떠서 팔려야 한다는 시장에 대한 욕망이 성찰 없이 수용되고 있다. 출판권력은 있어도 문단은 없다. 출판사와 작가라는 일대일의 관계만 남고 문학의 품위, 작가의 윤리, 문학사가 전승되는 ‘문단’이라는 공동체는 붕괴하고 있다. ‘근대문학의 종언’이 우리에게만은 틀린 소리라는 항변이 공허해지는 현장에 작가들은 서 있다. 소비되는 자로서 이 시대의 작가는 그래서 ‘작가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좀더 윤리적이고 실존적으로 하지 않을 수 없다.


전성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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