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동북아북한연구센터장
지난 8월 말에 있었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이 수많은 억측과 뒷이야기를 남긴 채 세간의 화제에서 멀어지고 있다. 북한의 국경도시 만포를 출발한 김정일 특별열차는 중국의 지안-지린-창춘-하얼빈-투먼을 방문했다. 중국 내 이동거리가 1600㎞, 여기에 평양으로부터의 이동거리 1300여㎞를 합친다면 총 2900여㎞에 이르는 대장정인 셈이다.
이 거리는 서울-부산을 세 번 반 왕복하는 수준으로, 병약하고 노쇠한 지도자가 5일 만에 수행하기에는 벅찬 여정이었음에 틀림없다. 김 위원장은 중국으로의 장거리 여행 후유증 때문인지는 몰라도 중국 방문 이후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9월 초, 김 위원장이 지나간 중국 지린(길림)성의 도시들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개발이 뒤진 접경지역 주민들은 부푼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들은 김 위원장의 동선이 지린성의 야심적인 국가개발 프로젝트인 창지투(창춘-지린-투먼) 개발계획의 3개 거점과 일치한다는 사실과, 북-중 접경지역인 투먼·훈춘·나진·청진을 연계하는 대규모 개발계획을 합의했을 것이라는 소문에 한껏 들떠 있었다.
게다가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을 대가로 하여 100여년간의 숙원인 동해로의 진출이 이루어졌다는 기쁨도 있었다. 덤으로 북한의 나진·청진과 같은 천혜의 요충지도 확보할지 모른다는 망상도 엿볼 수 있었다.
북-중 접경지역은 사뭇 분주했다. 중국 정부는 창지투 개발계획의 일환으로 북한과 연결되는 철도망과 도로망 시설 및 개보수 사업, 국경 도로교량 현대화 사업 등 총 8개 사업에 약 140억위안을 투자한다고 발표하였다. 이 사업의 일환으로 올해 5월에 중국 취안허(권하)와 북한 원정을 연결하는 국경의 다리가 소형 화물트럭만이 이동하던 노후 교량에서 40t 트럭이 통과 가능한 수준으로 개량되었다. 이에 따라 9월 말부터는 20~30t 이상의 대형 석탄 화물차량이 본격적으로 중국에서 나진항으로 오간다고 한다.
북쪽 세관에서 나진항에 이르는 53㎞ 도로의 너비도 현재의 6m에서 9m로 확장하는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북한의 나진과 중국의 상하이, 닝보를 연결하는 북한 경유 해상 국내무역이 본격화되기 시작하였고, 나진과 칭다오 간 비정기 컨테이너항로도 개설되었다.
중국 동북지역의 오지인 훈춘, 투먼 지역으로 창춘-훈춘 고속도로가 이번달에 전 구간 공사가 완료되었고, 창춘-지린-옌지-투먼-훈춘을 연결하는 시속 250㎞의 고속철도 건설사업은 2014년 완공을 목표로 한창 공사중에 있다. 고속철도와 고속도로의 종착지에는 훈춘, 투먼 경제개발구가 착실히 건설되고 있었다.
현지에서 만난 중국 관료들은 중국에서 50여㎞ 떨어진 나선특별시에 임금 50달러 수준의 산업단지와 나진항을 확보하고, 철도로 청진항까지 이용하게 된다면, 한국의 개성공단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의 통상출구 및 산업 거점을 확보하게 된다고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였다.
북-중 접경지역 현지에서 감지되는 움직임은 그간의 소위 ‘두꺼비의 부풀린 공기주머니’, ‘공갈빵’ 소식과는 분명히 달랐다. 그들의 설명을 듣고, 현장을 방문하면서, 마치 중국 무협영화의 장풍처럼 무형의 압박감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본격적인 동진 정책이 실체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핵실험과 천안함 사건이라는 북한발 쓰나미가 한반도를 강타하였다. 실타래처럼 뒤엉킨 복잡한 상황을 이용하여 누군가가 우리의 뒷마당을 기웃거리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북-중 접경지역의 움직임은 강 건너 불구경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답답하고 속터지는 상황이다.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동북아북한연구센터장
북-중 접경지역 현지에서 감지되는 움직임은 그간의 소위 ‘두꺼비의 부풀린 공기주머니’, ‘공갈빵’ 소식과는 분명히 달랐다. 그들의 설명을 듣고, 현장을 방문하면서, 마치 중국 무협영화의 장풍처럼 무형의 압박감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본격적인 동진 정책이 실체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핵실험과 천안함 사건이라는 북한발 쓰나미가 한반도를 강타하였다. 실타래처럼 뒤엉킨 복잡한 상황을 이용하여 누군가가 우리의 뒷마당을 기웃거리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북-중 접경지역의 움직임은 강 건너 불구경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답답하고 속터지는 상황이다.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동북아북한연구센터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