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대 기자
북한에 쌀을 보내자. 5000t이 아니라 40만t을 올 수확기 전에 보내도록 하자. 한없이 말의 유희를 벌일 일이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된다. 절실한 밥의 문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7월에 펴낸 <한눈에 보는 아시아 보건지표>(Health at a Glance-Asia)에서, 북한 주민의 하루 평균 에너지섭취량(2146㎉)이 아시아 20개국 중 가장 낮고, 5살 미만 유아 사망률은 1000명당 55명으로 가장 높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9월 북한의 7500가구를 대상으로 한 세계식량계획(WFP) 조사에서는, 5살 이하 어린이의 19%가 저체중이고 32%는 나이에 비해 키가 덜 자란 상태였다. 올여름 초입에 한 대북인권단체는 황해남도의 농촌마을 60% 이상이 식량부족 상태이고, 청진시에서만 하루 15~17명이 굶어죽는다는 북한의 참상을 전했다.
나는 수년 전 평양 상공에서 내려다본 끔찍한 장면을 잊지 못한다. 황톳빛 민둥산의 끝없는 행렬. 정수리가 반짝이는 수많은 산들 사이로, 나무 한 그루 찾아볼 수가 없었다. 북한은 전체 산림면적 900만㏊의 4분의 1 이상이 황폐산림이다. 사정이 이러니, 조금만 큰비가 쏟아져도 논밭이 끝장난다. 올해 신의주와 개성에는 수십년 만의 폭우가 쏟아졌고, 태풍 곤파스는 북한에 직격탄을 날렸다.
북한의 한해 곡물 부족량은 110만t에 이른다. 올해 사상 최악의 물난리 피해를 고려하지 않은 수치다. 그러나 북한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외부에서 들여온 곡물 물량은 겨우 17만7000t에 그쳤다. 우리와 미국, 유럽연합의 지원은 끊어지고, 자기 비용으로 곡물을 사들일 능력도 없다. 중국의 지원만 이어지고 있다.
대북 쌀 40만t 지원은 경제적으로도 정당하다. 종잡을 수 없는 하늘 변덕에 한해 농사를 망쳐버린 우리 농민들은 쌀값만이라도 안정되기를 학수고대한다. 80㎏ 한가마 값이 2년 전 16만원, 지난해 14만원대에서, 이달에는 15년 전 수준인 12만원대로 내려앉았다. 일부에서는 북한에 쌀을 주지 않겠다면 40만t을 바다에 쏟아버리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이상하게 들리지만, 북한에 쌀을 지원하면 정부 예산이 많이 절감된다. 재고 과잉을 그대로 안고 있으면 쌀값이 떨어지고 그만큼 농민들에게 직불금(올해 1조2000억원 예상)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재고 관리 비용이 10만t당 연 300억원에 이르고, 창고에서 묵힌 뒤에는 공짜나 다름없는 값에 주정용이나 가공용으로 처분해야 한다. 비싼 돈 들여 관리하다가 종국에는 공짜로 내놓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하지만 40만t의 쌀을 북한에 지원하면 최대 8000억원 정도의 비용만 치르면 된다.
북한 식량난 관련 자료를 찾다가 우리 신문의 정남구 기자가 2004년에 <한겨레21>에 실은 글을 발견했다.
“국민의 절반이 감자만 먹고 살던 아일랜드에 1830년대부터 감자 흉작이 이어져 1840년대 중반까지 100만명이 굶주려 죽고 300만명이 이민을 떠나는 대참극이 벌어졌다. 그 무렵 영국인들은 아일랜드의 ‘감자 기근’을 나몰라라 했는데, 아일랜드인들은 지금도 그 일로 영국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다. 감자를 심으며,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 동포들을 생각한다.”
돌아오는 봄에, 집 가까운 빈땅을 빌려 네댓평 작은 논을 만드는 상상을 해본다. 절반은 우리 이웃과 나눠 먹고, 절반은 북한에 보낼 방도를 궁리해봐야겠다. 다행히 사회적 기업 ‘흙살림’에서 도시 자투리땅에 작은 논을 만드는 도시텃논 운동을 벌이고 있으니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터이다. 김현대 기자koala5@hani.co.kr
돌아오는 봄에, 집 가까운 빈땅을 빌려 네댓평 작은 논을 만드는 상상을 해본다. 절반은 우리 이웃과 나눠 먹고, 절반은 북한에 보낼 방도를 궁리해봐야겠다. 다행히 사회적 기업 ‘흙살림’에서 도시 자투리땅에 작은 논을 만드는 도시텃논 운동을 벌이고 있으니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터이다. 김현대 기자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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