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시론] 국가와 시민이 정용진에게 답하라 / 조국

등록 2010-09-26 20:24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트위터상 ‘이마트 피자’ 논쟁이 화제다. 이마트가 시중의 피자보다 크기는 크면서 값은 저렴한 즉석피자를 판매하여 폭발적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한다. 네티즌들이 이런 행위는 중소 피자가게의 몰락을 초래한다고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에게 비판을 제기하자 이 ‘시장 강자’는 냉정하게 반박했다. 즉 “소비를 이념적으로 하나? 많은 분들이 재래시장 이용하면 그 문제는 쉽게 해결되고 어차피 고객의 선택이다.” “님이 걱정하는 만큼 재래시장은 님을 걱정할까요?”라는 조소와 함께.

이런 대응으로 미루어 보건대 중소상인의 생태계를 살리는 윤리경영을 하라는 호소가 정 부회장에게 먹히지 않을 것 같다. 미국 브라운대 경제학과를 나온 그가 ‘대기업 프렌들리’가 제도적으로 고착화된 현재의 경제질서 속에서 대기업과 중소상인 사이에 공정경쟁이 이루어지기 어렵고, 이때 소비자의 선택은 시장 강자에 의해 조종된다는 점을 모를 리 없다. 그가 현행법상 허용되는 이윤추구를 그만둘 리도 없다. 이제 공은 국가와 시민에게 와 있다.

정 부회장이 ‘이념’을 말하니 헌법의 경제이념부터 보자. 헌법 제119조는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한다. 헌법은 자유경쟁의 이름 아래 시장 약자를 몰락시키는 경제질서를 상정하지 않는다. 일찍이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사자와 소를 위한 하나의 법은 억압이다”라고 갈파하였다. 사자와 소를 한 울타리에 넣어 놓고 자유롭게 경쟁하라고 하는 것은 사자보고 소를 잡아먹으라는 얘기와 같다. 여기서 칸막이를 만드는 국가의 역할이 긴요하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은 칸막이를 만드는 시늉만 하고 있다. 예컨대 기업형 슈퍼마켓(SSM)은 전국적으로 급증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청을 통한 사업조정권고는 1년에 5건 정도만 이뤄지고 있다. 6·2 지방선거를 앞둔 지난 4월, 재래시장의 경계로부터 500m 이내는 기업형 슈퍼마켓 입점을 제한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과, 대기업 직영 기업형 슈퍼마켓과 프랜차이즈형 체인점포를 사업조정 대상에 포함시키는 대중소기업상생촉진법 개정안이 국회 지식경제위원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선거 후 한나라당은 태도를 바꾸어 대중소기업상생촉진법 개정안 처리에 반대하고 있다. 당내에서 기업형 슈퍼마켓 규제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가 우려된다 또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지장을 준다 등의 주장이 나온다. 도대체 어떠한 법적 근거에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다수 국가는 지자체 조례를 통하여 중소상인의 매출영향 평가, 지역주민의 동의를 대형 상가점포 신설의 조건으로 만들고 있지 않은가. 생각건대 헌법 경제조항의 이념이 구현되려면 국가를 압박하는 주권자 시민의 역할이 필요하다.

시민은 정 부회장이 비웃는 ‘이념적 소비’를 보란듯이 실천해야 한다. 시민은 자신이 종사하는 분야에 대기업이 ‘문어발’을 뻗으면 화를 내면서, 다른 분야에 진출한 대기업의 상품과 서비스는 “싸고 질 좋다”며 애용하는 모순을 종종 드러낸다. 사실 첨단기술 제품도 아닌 피자, 어묵, 떡볶이, 순대, 튀김까지 대기업의 것을 소비할 필요성이 어디 있는가.

시민이 재래시장, 동네 상점, 동네 카페, 지역생산자조합이 만든 ‘로컬 푸드’ 등을 외면하고 대기업 백화점, 기업형 슈퍼마켓, 대기업 소유 프랜차이즈 카페, 대기업 생산 음식 등을 향해서만 달려갈 경우 그 결과는 무엇일까. 대기업은 영역 확장을 위한 ‘무한도전’을 계속할 것이고, 자본력과 유통망이 취약한 중소상인은 계속 몰락할 것이다. 시민은 눈물을 머금고 가게 문 닫는 이웃의 모습이 바로 자신의 미래일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정 부회장은 조소했지만, 시민은 위세 부리는 이익과 힘의 논리 앞에서 서로를 걱정하고 배려하고 연대해야 한다. 가격과 편리함을 유일 잣대로 삼지 않는 ‘착한 소비’가 필요한 시간이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