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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종석칼럼] ‘MB식 대북정책’의 유효기간

등록 2010-09-27 18:39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대북정책에 변화 조짐이 있다고들 한다. 곳곳에서 남북한 비공개 접촉 얘기가 흘러나오고 비록 소규모지만 수해를 당한 북한에 정부 지원이 이루어진 것 등을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이명박 정부가 대북정책을 바꿀 의지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남북관계는 악화되고 국민생활은 불안정해졌으며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인 한반도 안보 위험은 높아졌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우리 정부 뜻대로 움직이게 된 것도 아니다. 북한 핵문제는 더욱 악화되었고, 북한은 남쪽에 대해 전보다 훨씬 호전적이 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못된 버릇’을 고치겠다며 대북강경책을 정당화해왔으나, 북한에 대한 감성적 편견을 마치 합리적인 전략적 판단으로 혼돈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은커녕 임기 말까지도 북한의 버릇을 고치기 어려울 것이다.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드러난 정부의 자가당착적인 태도는 대북정책의 실효성을 더욱 떨어뜨렸다.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북한 핵문제의 진전을 남북관계 진전의 전제로 삼은 ‘비핵·개방·3000’을 대북정책의 기조로 삼아왔다. 그런데 북핵문제 논의를 위한 6자회담 재개 분위기가 무르익은 가운데 천안함 사태가 발생하자, 천안함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6자회담 재개가 불가능하다는 태도를 취해 미국의 동의까지 얻어냈다. 북핵문제는 지난 20년간 한국 안보의 최대 위협으로 인식돼온 주제이며 현 정부 대북정책의 최우선 과제였다. 따라서 천안함 사태가 아무리 엄중했어도 북핵문제와는 별개로 다루었어야 했다. 그러나 정부는 천안함 사태라는 남북 현안의 해결을 북핵문제 진전의 전제로 삼았다.

이는 결과적으로 정부가 대북정책의 기조를 북핵 우선에서 갑자기 남북관계 우선으로 180도 바꾼 것이나 다름없게 되어 국민과 국제사회를 혼란케 했다. 전보다 완화되기는 했지만 지금도 정부는 천안함 사태에 대한 북한의 사과가 6자회담 재개의 전제라고 말한다. 한편에서는 여전히 핵문제의 진전이 없는 남북관계 개선은 의미가 없다고 한다. 여기서는 ‘A가 실현되지 않고는 B를 할 수 없다’고 하고, 저기서는 ‘B가 이루어지지 않고는 A로 나아갈 수 없다’고 한다. 도대체 정부가 스스로 저지르고 있는 이 자가당착을 깨닫고 있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정책으로는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 일이건, 북한의 버릇을 고치는 일이건 어느 것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의 실효성은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현재의 정책을 ‘엠비식 대북정책’이라고 유형화한다면 이 정책의 유효기간은 길어도 차기 대통령 선거일인 2012년 12월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여당 후보를 포함해서 대통령 후보 중 누구도 아무런 소득도 없이 남북관계 악화만을 초래한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계승하겠다고 공언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남북관계가 계속 악화된다면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대북정책이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은 뻔하다. 그때는 여당 후보조차 표를 얻으려고, 악화된 남북관계에 전환점을 마련하기 위해 남북정상회담을 열어 김정일 위원장과 담판을 짓겠다는 등의 ‘반엠비식 대북정책’을 제시할 것이다. 그때 현 정부 관계자들은 북한의 버릇을 고치는 데 정부 임기 5년으로는 부족하다며 여전히 ‘의연한 대북강경책’을 주장할지 모르나, 남북관계의 현실을 무시해서 실패한 정책에 대한 변명에 귀기울일 후보가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답은 분명하다.

이명박 정부는 2년 뒤에 자신의 정책이 선거현장에서 부정당하는 일을 겪기 전에 하루빨리 정책을 바꾸어 적극적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북핵문제 진전에 역동적인 주체로 나서야 한다. ‘엠비식 대북정책’의 유효기간은 앞으로 최대 2년이지만 더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그것이 국민에게도 좋고 이명박 정부에도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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