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2009년 1월부터 김정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임을 암시하는 작업을 해왔다. 발걸음 노래 보급, 샛별유화 등장, CNC(컴퓨터제어기술·김정은이 주도한 것으로 시사) 강조, ‘조선은 세계를 향하여’라는 구호 등장, 김정은을 지칭하는 장편 서사시의 시구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지금까지 한번도 김정은이 후계자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김정일이 직접 김정은에게 조선 인민군 대장 칭호를 부여하고 당 대표자회에서 그를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중앙위원으로 선임한 것은 김정은 후계자론을 사실상 공식화한 것이다.
현존 사회주의 국가 역사상 유례가 없는 3대에 걸친 권력승계 현상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당사자인 북한이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하고 정당화하고 있는지와 후계체제의 권력정치적 속성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 달리 북한은 그들 방식의 권력승계를 정당화하는 논리체계, 즉 후계자론을 정립해 왔다.
북한에서 권력승계의 본질은 당의 총비서 또는 국방위원장 같은 공식적인 특정 직위를 승계하는 것이 아니라 수령을 승계하는 것이다. 수령 후계를 정당화하는 최상위의 논리체계는 주체사상이다. 여기에서 혁명적 수령관과 계속혁명론이 도출된다. 그리고 이것을 토대로 후계자의 지위와 역할 및 자격조건 등을 명시하고 있는 후계자론을 정립했다.
북한이 강조하는 후계자론의 핵심은 1대 수령인 김일성의 사상과 이론, 혁명업적, 투쟁경험, 사업방법 등과 같은 혁명적 혈통을 계승·발전시키는 일(김일성 체현론)이다. 생물학적 혈통의 계승과는 다른 것이다. 북한은 김정일이 수령 김일성의 후계자가 된 것은 수령의 자식이기 때문이 아니라 수령의 혁명적 혈통을 가장 잘 계승·발전시킬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었다고 주장해 왔다. 김일성 체현론의 위상은 1998년 9월 수정·보충된 헌법(김일성헌법) 전문에서 김일성을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로 규정함으로써 더욱 강화된 셈이다.
이렇게 볼 때 김정일의 후계 문제를 논의하고 결정하는 데 있어서 별도의 새로운 후계자론을 내세울 필요성은 없을 것 같다. 다만 2009년 4월에 수정·보충된 헌법 3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주체사상과 더불어 “선군사상을 자기 활동의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는 조항이 신설되었다. 이 때문에 2대 수령인 김정일의 선군사상을 구체적으로 체현하고 조절하는 과업과 연관된 후계논리를 보강할 수는 있을 것이다.
권력정치라는 또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북한의 후계체제 구축 문제는 독재권력의 안정적 유지 및 강화 전략과 밀접하게 연관된 정치사업이다. 이번에 김정은이 군과 관련된 지위를 먼저 차지하게 된 이유를 인상주의적 가설(impressionistic hypothesis) 수준에서 설명하면 1인 독재체제의 강화를 위한 핵심 권력주체의 교체 필요성 때문이다.
1대 수령 김일성은 군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자신의 당권을 확실하게 장악하기 위해서 후계자인 김정일에게 첫 정치사업으로 당권장악과 당 쇄신 임무를 맡겼다. 김정일은 당권을 먼저 장악한 이후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군권 장악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선군정치가 강조될 수밖에 없었다.
선군정치가 장기간 지속되면 군부가 필요 이상으로 비대해지고 김정일 권력의 레임덕 현상을 가속화시킬 위험성도 그만큼 커진다. 아마 김정일은 앞으로 김정은을 통해서 그동안 필요 이상으로 세력이 커진 군부를 견제하려고 할 것이다. 김정은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2대 수령인 김정일의 선군사상의 위상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군부의 영향력을 축소시킬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가 될 것이다. 최완규 북한대학원대 부총장
선군정치가 장기간 지속되면 군부가 필요 이상으로 비대해지고 김정일 권력의 레임덕 현상을 가속화시킬 위험성도 그만큼 커진다. 아마 김정일은 앞으로 김정은을 통해서 그동안 필요 이상으로 세력이 커진 군부를 견제하려고 할 것이다. 김정은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2대 수령인 김정일의 선군사상의 위상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군부의 영향력을 축소시킬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가 될 것이다. 최완규 북한대학원대 부총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