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민주당 전당대회가 내일로 다가왔다. 최종 선택을 눈앞에 둔 만큼 후보 사이 경쟁이 치열하지만, 정작 외부 시선에선 맥이 빠져 보인다. 지난 9월 초 전당대회 룰을 결정할 때부터 저조한 흥행은 이미 예정돼 있었다. 대의원과 당원이 아니라면 전당대회에 개입할 뾰족한 방법이 없다. 지나간 버스에 손 흔들기겠지만, 한나라당도 도입한 국민여론조사를 외면한 것은 시민 주체성을 중시해야 할 개혁정당으로서 첫 단추를 단단히 잘못 끼운 것이다.
비전 논쟁도 마찬가지다. 국민생활 우선 정치, 담대한 진보, 수권정당론 등 다양한 담론이 제시됐지만, 미국 민주당과 일본 민주당을 포함해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말들이다. 진보적 가치와 생활정치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보수세력의 신자유주의적 개발주의에 당당히 맞서고, 무너져가는 서민과 중산층의 삶을 즉각 구제할 수 있는 대안적 비전의 고민, 새로움, 공감이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민주당에 절실한 것은 말의 상찬이 아니라 실천의 진정성, 평면적 좌클릭이 아니라 진보와 개혁을 아우르고 혁신하는 벡터적 전환이다.
룰에 따르면, 이번 전당대회에서 유력 후보들이 모두 지도부에 입성할 가능성이 크다. 집단지도체제는 장단점이 분명한 시스템이다. 최고위원들 간의 상호견제는 당 운영의 일관성을 떨어뜨리겠지만, 생산적 경쟁의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 야당다운 야당이 되기 위해서는 ‘빅3’이라는 이름에 정말 걸맞게 당내에서 노선·비전·정책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게 차라리 나을 수 있다.
그동안 진행된 과정을 돌아보면 아쉬움이 적지 않지만, 이번 전당대회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두 가지 점에서 그러하다. 첫째, 지난 6·2 지방선거로 우리 정치지형은 보수 우위의 구도에서 보수 대 진보의 균형구도로 변화했다. ‘성장연합’(한나라당·자유선진당) 대 ‘분배연합’(민주당·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진보신당·창조한국당)의 지지율은 팽팽히 맞서고 있으며, 이 분배연합에서 민주당의 구실은 여전히 중요하다. 민주당이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정치지형의 변화가 이뤄질 수도 있고, 연합정치의 방향과 전략이 달라질 수도 있다.
둘째, 정강·정책 변화도 눈여겨봐야 한다. 이번 전당대회에선 새로운 정강·정책이 의결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도개혁주의’를 삭제하고, 무상교육 확대, 실질적 무상의료 현실화, 보편적 복지국가 실현, 정부의 능동적 역할 강화 등을 채택할 예정이라고 한다. 진보적 지향을 더욱 분명히 하지 않은 것에 아쉬움이 크지만, 정체성이 모호했던 민주당으로서는 ‘새로운 진보’의 정치적 구심으로 거듭날 수 있는 의미있는 변화가 될 것이다.
6월 지방선거 직후 나는 민주당 의원 워크숍에 가서 지방선거의 의미와 과제에 대해 강연한 바 있다. 그 자리에서 인용한 말 중 하나는 정치란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주는 것’이라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발언이다. 비관적인 여론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연합정치에 소중한 한 표를 던졌던 유권자들을 위해 촛불집회와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기억의 정치’를 넘어서서 새로운 ‘희망의 정치’를 민주당은 선물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민주당을 지켜보고 아끼는 사람들의 소박한 소망은 민주당이 민주당다워지는 것이다. 민주당은 과연 누구의 벗인가. 민주당다워진다는 것은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책 정당, 그들의 목소리를 적극 대변하는 진보·개혁 정당,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하는 수권 정당으로 거듭나는 것을 뜻한다고 나는 믿는다. 민주당 전당대회가 새로운 출발의 의미를 갖게 되길 기원한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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