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정책실장
정부는 지난 9월10일 제2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안)을 발표하면서 1차 연도(2006~2010)의 저소득 가정, 보육지원 중심에서 정책 수요가 높은 맞벌이 가구와 일·가정 양립 등 종합적 접근으로 정책 영역을 확대했다. 저출산 정책의 체감도와 실효성을 제고하겠다는 의도라 한다. 가장 낮은 출산율을 보인 2006년도의 1.12가 여전히 1.15에 머물러 있다. 이런 현실이 말하듯, 그간의 저출산 대책은 성과가 미미했다. 매우 혁신적이고 과감한 대책이 아니면 가임기의 남녀에게 출산 동기를 불러 실제적으로 출산율을 상승시키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정부는 출산과 양육에 유리한 환경 조성을 위해 육아휴직 40% 정률제, 유연근로시간제 확산, 자율형 어린이집 도입, 보육료 지원 범위 70%까지 확대 등을 주요 정책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일하는 여성의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다. 일하는 여성들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하고 비정규직 여성에 대한 차별을 심화시킬 수 있다. 일하는 여성의 지위를 더욱 불안정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성이 매우 큰 정책이라 하겠다.
우선적으로 출산과 양육에 유리한 환경이란 여성들이 더는 임신과 출산을 이유로 직장을 그만두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는 것이다. 일하는 여성들이 회사 눈치 안 보고 맘 편히 산전후휴가를 쓸 수 있는 환경 조성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최근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여성들의 71%는 여전히 자녀출산을 계기로 직장을 그만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워킹맘은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인사상의 불이익(42.4%)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비정규직 여성들은 단 10%만이 산전후휴가를 사용하고 있다. 많은 비정규직 여성들은 임신 사실을 알림과 동시에 계약해지 통보를 받고 육아휴직은커녕 산전후휴가조차 쓰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여성노동자들의 70%가 비정규직이란 현실을 고려할 때 저출산 대책의 우선순위가 누구인지는 이미 답이 나온 문제이다. 비정규직이기에 출산을 이유로 계약해지 당하는 여성들에 대한 고용유지 대책이 절실하다. 회사의 관행이라는 이유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있는 산전후휴가 제도조차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우선되어야 한다.
또 산전후휴가나 육아휴직은 고용보험 가입자만 사용할 수 있다. 현재 정규직의 82.4%, 비정규직의 37%만이 고용보험에 가입(2009. 8)되어 있다. 고용보험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산전후휴가 제도 수혜 대상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현실이 이런데도 이번에 발표된 정부의 저출산 대책에는 비정규직 여성, 영세소규모 업체에서 일하는 여성에 대한 대책은 단 한 줄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들이야말로 가장 정책수요가 높은 계층인데 왜 이들은 이번 정부가 발표한 정책 대상에서 제외됐으며, 생색내기 정책조차 없는가?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육아휴직 급여 인상 정책은 일하는 여성 간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우려가 있는 것이다.
얼마 전 파견업체에서 일하다 임신 사실을 알리자 바로 해고된 29살의 비정규직 여성의 절절한 호소를 정부는 들어야 한다. “둘째가 안 생기란 법은 없는데 회사에 말을 안 해야겠다. 임신이 무슨 굉장히 사회적인 범죄처럼…회사에 누를 끼치는 것처럼 되는 부분이 있어서…여자로 태어나서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거든요. 근데 지금은 내 능력이 도태되고 사회에 자리매김도 못하고….”
최근 정부는 ‘공정사회’를 화두로 삼고 있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차별 없는 공정한 정책 집행이 가능하려면 어떤 정책적 대안이 필요한지 현실적 대안 마련으로부터 저출산 대책을 전면 검토하기를 바란다.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정책실장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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