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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손학규 대세론?

등록 2010-10-05 19:13

김의겸 정치부문 선임기자
김의겸 정치부문 선임기자
9년 전 민주당을 출입하며 이인제 의원의 ‘마크맨’을 했다. 마크맨이란 유력 정치인을 전담해 밀착취재하는 기자를 일컫는다. 당시 이 의원의 위세는 대단했고, 따라다니던 기자들도 덩달아 특별대접을 받았다. 어느 신문사는 서로 이인제 마크맨을 하려고 선후배가 다투기도 했다. 그 경험 탓에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이 의원이 자꾸만 겹쳐 보인다.

둘 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받아 국회의원이 됐고, 장관을 했으며, 경기도지사를 지냈다. 한나라당을 떠나 민주당으로 와서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로 성장한 것도 같다.

하지만 손 대표의 입지는 과거 이 의원만 못하다. 이 의원은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 기여를 했으나, 손 대표는 공적이 없다. 2000년 총선에서도 이 의원은 충청과 경기에서 민주당의 영토를 넓혔으나, 손 대표가 이끈 2008년 총선 성적표는 신통치 않다. 이 의원은 동교동 구파의 지원을 받아 현역 의원만 40명 가까이 거느렸으나, 이번 전당대회에서 손 대표를 지지한 의원은 20명이 채 안 된다.

그토록 위풍당당하던 이인제 대세론도 허망하게 무너져내렸다. 이인제 카드로는 이회창 대세론을 넘어서지 못할 것 같자, 민주당 지지자들이 ‘적통’인 노무현 후보에게 몰려갔기 때문이다. 대세론은 더 큰 대세론 앞에서 초라하기만 했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손학규 대표 캠프도 일종의 대세론을 폈다.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를 적극적으로 선전했고, 손 대표도 “나를 당의 얼굴로 내세워야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자신감의 발로이고, 대세에 순응하라는 압력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런 대세론의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이다. 현재의 당 지지율 25%가량은 사실 민주당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에 가깝다. 정치인의 지지도를 극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큰 선거도 없다. 설사 손 대표가 출중한 능력을 발휘한다 해도, 상대의 대세론은 더 빠르게 확산된다. 최근 한나라당 친이계 의원들은 박근혜 의원에게 눈도장 찍기에 바쁜 모양이다. 과거 박 의원에게 접근하는 게 ‘배신’으로 비쳤던 부담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난 2일 청와대 만찬에서는 대통령이 나오기 전에 박 의원과 사진을 찍으려고 한나라당 의원들이 길게 줄을 섰다고 한다. 몇몇 친이계 의원은 이때 찍은 ‘인증샷’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결국 골을 넣으려면 손 대표의 개인기가 아닌, 야권 전체의 조직력밖에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 대선도 1 대 1 구도를 만드는 게 유일한 승리 전략이다. 손학규·정동영·정세균뿐만 아니라, 유시민·이정희·노회찬·심상정 등 야권의 모든 주자들이 단일 리그에서 겨뤄야 만들어낼 수 있는 틀이다. 그러자면 손 대표가 양보하고 헌신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야권 통합을 위해 스스로를 던져야 국민의 감동을 자아내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지지율은 그 결과일 뿐이다.

손 대표는 혁명을 꿈꾸던 젊은 시절 한전에 취직하려고 했단다. 혁명의 순간이 오면 스위치를 내려 서울시내의 불을 다 꺼버리려고 했다는 것이다.


정치노선이 달라 보이던 최장집 교수는 뜻밖에도 손 대표의 후원회장을 맡았다. 그 이유를 물으니 “80년 논문 자료를 모으려고 평창동 고갯길에 있는 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를 찾아가보니, 서울대 정치학과까지 나온 사람이 먼지 구덩이 속에서 바위같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받은 인간적 신뢰” 때문이라고 답했다. ‘청년 손학규’의 낮은 자세가 야권의 단결을 이끌어내고, 손 대표에게도 길을 열어줄 것이다.

김의겸 정치부문 선임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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