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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한-미 FTA, 재협상 아닌 재검토를 / 정석구

등록 2010-10-11 20:34수정 2010-10-12 09:29

정석구 선임논설위원
정석구 선임논설위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논란이 한창이다. 일부 야권 의원들이 지난주 전면 재협상을 공개적으로 요구하자 한나라당과 친정부 언론들은 국익에 반하는 것이라며 누구를 위한 재협상이냐고 몰아붙이고 있다. 3년 전 두 나라가 합의·서명한 협정문을 이제 와서 다시 뜯어고치자는 게 말이 되느냐는 주장이다. 언뜻 듣기엔 아주 타당한 지적처럼 들린다.

하지만 사안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 재협상 논란의 출발부터가 그렇다. 재협상 논란은 야권 의원들의 문제제기로 본격화했지만 논란을 촉발한 쪽은 미국이다.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다음달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전까지 한-미 에프티에이 내용 보완을 위한 협상을 마무리하라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지시를 받았음을 여러 차례 밝혔다. 우리 정부와 비공식 접촉을 갖고 사실상 재협상을 압박하고 있다. 야권 의원들의 전면 재협상 요구는 이런 미국 쪽 움직임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시작된 수세적 측면이 강하다.

우리 정부가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고 애초 합의문대로 비준을 관철할 수 있다면 전면 재협상 요구는 힘을 받기 어렵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재 정부의 공식 입장은 “협정문은 수정할 수 없으며, 쇠고기 문제는 에프티에이와 별개의 이슈로 논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상회의를 앞둔 상황에서 미국 요구를 완전히 묵살하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도 이미 미국차를 국내 환경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한덕수 주미 한국대사도 정상회의 전까지는 두 나라의 견해차가 해소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자-국가 제소제 등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까지 모두 의제에 포함해 전면 재협상하자고 하는 건 합리적인 요구다. 문제는 전면 재협상 요구의 타당성 여부와 관계없이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데 있다. 지금 한-미 사이에 진행되고 있는 재협상은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이전’에 ‘자동차와 쇠고기 분야에 국한’해 타결점을 찾으려는 것이다. 따라서 협상 범위를 확대하는 건 시간상 불가능하다. 결국 야권의 전면 재협상론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미국은 ‘투 포인트 협상’을 통해 자동차와 쇠고기 분야에서 자신의 이익만 챙기고 막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

이 지점에서 재협상을 요구하는 야권 등은 현실적인 전략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전면 재협상 요구는 명분상 그럴듯할지 모르지만 현실에서는 설 자리가 별로 없다. 아직 국민적 공감대가 약할 뿐 아니라 두 나라가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압박하고 있는 ‘투 포인트 협상’부터 저지하는 게 우선이다. 우리 정부가 미국의 일방적인 요구를 밀실협상에서 수용하는 일이 없도록 감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미 합의·서명한 협정문을 일방적으로 미국 쪽에 유리하게 수정하려는 것부터 막자고 하는 게 명분과 실리 면에서 훨씬 효과적이다. 그런 다음 정상회의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재협상 논의를 시작해 기존 협정의 ‘이익 균형’을 재조정해야 한다. 논의에 진전이 없으면 여건이 무르익을 때까지 협정문의 국회 비준동의를 유보하는 것도 방법이다. 에프티에이를 서둘러 서명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발효되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가 당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것도 아니다.

타협점을 못 찾으면 한-미 에프티에이 체결 자체를 재검토하는 문제까지 논의할 수 있다고 본다. 그동안 들인 국가적 노력은 어쩔 것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니’ 그냥 가자고 하기엔 한-미 에프티에이가 우리 사회에 끼칠 영향이 너무 크다. 한-미 에프티에이는 다른 나라와의 에프티에이와는 다르다. 우리의 경제체제뿐 아니라 사회제도 전반을 사실상 완전 미국식으로 개조할 정도로 협정의 수준이 아주 높다. 이번 재협상 논란이 지금 같은 방식과 내용의 한-미 에프티에이를 꼭 체결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다시 시작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정석구 선임논설위원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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