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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기축통화 패권의 폭력 / 윤석천

등록 2010-10-12 18:15수정 2010-10-12 20:33

윤석천 경제평론가
윤석천 경제평론가
벤 버냉키 미국 연준 의장은 대공황을 연구한 학자다. 2008년 금융위기가 발발했을 때 미국은 공황의 초입에 있었다. 버냉키로서는 공황을 용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공황을 막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단순했다. 바로 엄청난 양적완화를 통해 하락하는 자산을 무차별적으로 매입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자산이든 상관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버냉키가 공급한 유동성이 지금까지 약 12조달러에 이른다.

변증법의 기본법칙 중 하나가 양질전화의 법칙이다. 이 법칙에 따르면 이제 엄청나게 퍼부은 유동성의 양이 경제시스템의 질적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그러나 미국에서 버냉키의 양적완화 정책은 실패하고 있다. 일부 자산시장을 제외하고 미국은 디플레이션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늘어난 유동성과는 달리 신용의 수축은 계속되고 있다. 은행도, 신용 수여자도 서로 믿지 못하는 불신이 팽배해 있는 것이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양적완화의 양이 좀처럼 질로 전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버냉키는 2차 양적완화 정책 시행을 시장에 흘리고 있다.

그렇다면 버냉키는 실패한 것일까? 앞에서 언급했듯이 양질전화의 내부적 전개에는 실패를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양질전화의 외부적 전개에 성공하면서 엄청난 이득을 챙기고 있다. 양질전화의 성공적 외부 전개란 엄청난 양의 달러 캐리 트레이드를 통한 자본이득의 실현을 말한다.

미국 입장에서는 달러 캐리 트레이드를 통해 자체적으로 불가능한 인플레이션을 외부적으로 발생시켜 부채 경감을 꾀하고 있으며 자본이득까지 챙기고 있다. 월가는 제로금리로 빌린 공짜 돈을 상품시장과 신흥국의 자산시장에 융단폭격을 하듯 퍼붓고 있다. 생산적 활동에 쓰여야 할 돈이 어느덧 투기화해 세계를 공격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양질전화의 부정적 외부 전개이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마음껏 찍어낸 돈을 이용해 세계의 부를 긁어모으는 것이 바로 오늘의 미국이다. 버냉키가 2차 양적완화를 시장에 흘린 뒤 지난 몇 주 동안 대두는 23%, 오일은 30%, 구리는 39%, 밀은 97% 폭등했다. 미국의 주식시장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주식시장, 특히 신흥국의 주식시장은 가히 폭등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상승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미국의 기축통화 패권에 당하고 있는 국가의 일부 위정자들이 이것을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악용한다는 것이다. 주식시장의 상승과 채권시장의 강세를 마치 자신들이 정치를 잘해 펀더멘털이 좋아졌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호도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들어오는 돈의 정체는 명확하다. 그것은 자본이득을 바라고 들어오는 투기성 자금에 불과하다. 그것은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이 부정적으로 전화되면서 발생한 악성 슬러지일 뿐이다.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의 부정적 외부 전개 및 그것의 정체성에 대한 호도 현상이 깊어지면서 공황의 가능성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물론 그 진원지는 이제 미국이 아닌 다른 국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퍼부은 엄청난 유동성 때문에 다른 국가들은 이미 금리정책의 가용성을 상실한 상태이다. 밀려오는 달러를 막기 위해서는 인위적으로 자국 통화의 가치를 낮추어야 하는데 이는 유동성의 홍수만을 불러올 뿐이다.

또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이런 이유로 자국 통화의 평가절하를 경쟁적으로 시도한다면 결국 그 어떤 국가도 그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마지막 수단은 보호무역이 될 것이다. 보호무역이란 한번 불붙으면 전염성이 매우 강해 다른 국가로 쉽게 퍼지는 성격이 있다. 대공황을 더블딥으로 몰고 간 것은 1930년 6월 이른바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통과되면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2차 양적완화 정책은 세계를 공멸로 몰고 가겠다는 기축통화의 패권주의에 불과하다. 미국은 중국을 비난하지만 중국의 환율조작만큼이나 미국의 기축통화 패권주의 역시 위험하다. 미국은 세계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하고 있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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