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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수신료 인상 ‘합의’ 극을 끝내라 / 전규찬

등록 2010-10-15 18:21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한국방송 이사회가 수신료 인상을 놓고 오늘내일 초읽기에 들어간다. 결론부터 말해 야당 추천 인사들은 당장 인상 논의를 접어야 한다. 전략적으로 의미가 없고, 무엇보다 사회적 합의 정신에 어긋나는 3500원 카드를 접으라는 것이다.

목적과 수단이 완전히 뒤집혔기 때문이다. 맨 처음 수신료 인상 논의를 시작할 때의 생각을 잊은 듯하다. 인상의 명분과 이유가 전혀 없고 그래서 논의 자체가 이미 무효인데, 1500원을 올리느냐(여당 이사 안), 1000원이면 되냐(야당 이사 안)를 갖고 계속 떠들고 있다.

공영성 확보와 공익성 발휘, 공공성 보장을 전제로 수신료 인상에 참여한 것 아닌가? 그런데 전자는 빠지고 후자만 달랑 남았다. 빈 껍질 상태다. 그래서 대화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는데, 왜 아직 미련을 갖는가? 왜 중지를 선언하지 않고, 왜 탈퇴를 통보하지 않고, 3500원 인상안을 들고 ‘협상’에 참여하고 계신가? 혹 공영성과 공익성, 공공성의 보장이라는 전제조건이 성립하지 않아도, 그래도 여전히 3500원 정도로는 수신료를 올려줘야 한다는 것인가?

야당 이사들은 명분을 지키고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수신료를 올려줘야 하는 이유가 정말 무엇인가? 한국방송의 어떤 모습에 신뢰가 가서, 공영방송의 어떤 가능성을 기대해, 과연 누구의 이익을 위해서 수신료를 인상해 줘야 한다는 것인가? 좀더 질 높은 공적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대가로 시청자 대중들이 추가로 부담하는 비용이 수신료 인상이다. 여야 이사들의 3500원 인상 주장은, 액수와 무관하게 이런 일반의 상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며 또한 그런 사회적 합의를 성실히 반영하고 있는가?

악착같이 수신료를 인상하고자 하는 한국방송(혹은 그 이상 권력)의 무리수에 대해서는 더 반복하지 않겠다. 그렇지만 민주당의 말을 따라야 하는 신분도 아닌 야당 이사들에게는 공개적으로 분명히 따지고 싶다. 여당 쪽의 4000원 안과 별로 다를 것도 없는 3500원에 집착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500원 깎았다고 시청자들로부터 칭찬받을 일 없다.

수신료 인상에 관한 ‘사회적 합의’라는 이름의 정치과정은 결코 여당/권력이 파견한 이사들과 당신들 사이의 공식적인 협상이나 배후의 타협을 통해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수신료 인상을 양자간 ‘협상’ 혹은 양당간 ‘타협’의 대상이 아닌 ‘사회적 합의’의 문제라고 할 때, 이미 사회적 합의는 내려지다시피 했다. 이사회 내부의 ‘합의’에 집착하는 것은 결코 민주적이지 않다.

4000원이냐 3000원이냐 하는 본질에서 벗어난 산술적 토론이 한국방송 이사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 ‘합의’라는 이름의, 정확하게 말해서 500원의 차이를 어떻게 해소하느냐를 둘러싼 협상과 타협이 이루어지고 있다. 인상 대가로 실질적인 뭔가를 교환하는 그런 민주적 협상, 정치적 타협의 룰에서 벗어난 내부자들끼리의 숫자놀음처럼 보인다.

한국방송 이사로서 일반이 이해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나 특수한 이해관계가 있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조건 없는 인상을 고집하지 말라.


공영성·공익성·공공성 확보의 조건이 성립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 어떤 수신료 인상 시도에도 반대한다고 원칙을 밝혀야 한다. 그게 이 시대 야당 추천 한국방송 이사들의 개인적 양심이고 집단적 판단이라고 당당하게 선언해야 한다.

어차피 결정은 이사들의 몫이 아니다. 야당 인사들의 권능도 아니고, 여당/권력이 정할 문제도 아니다.

최종적 주권은 시청자 대중에게 있고, 대중들은 이미 결정했다. 그러니 서툰 3500원 대안이 아닌 사회적 합의라는 대안을 따르라. 사회적 합의를 거스르는 ‘합의’는 모두 사기니까. 마음이 급하니 말이 과격해졌다.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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