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대 기자
“쌀 생산 8조, 그거 삼성전자 매출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농산물, 꼭 우리가 생산해야 하나? 돈만 있으면 수입할 수 있는 세상이다.”
1994년의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우리의 주류 사회에서 농업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민간 경제단체와 상당수 경제신문사들은 일관되게 ‘소신’을 펼치고 있다. 농업예산을 틀어쥔 경제 부처의 정책방향 줄거리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들이 수행하는 ‘이데올로기 전쟁’의 목표는 헌법상의 경자유전 폐지와 농업보조금 삭감, 그리고 가족농의 조기 퇴출이다. 그렇게 해서, 값싼 농지를 손쉽게 공장 터로 바꾸자는 것이다. 기업농의 규모화 경작으로 수출 경쟁력을 높이자는 것이다. 농촌의 다수를 차지하는 소농과 고령농은 이들에겐 ‘산업 구조조정’의 대상일 뿐이다.
문제는, 농민과 농업의 보루인 농림수산식품부조차 확실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거나 때로는 그런 기류에 적극적으로 편승해 왔다는 점이다. 농식품부는 수출농업 육성을 외치면서, 소수의 엘리트 부농 위주 정책을 펴 왔다는 비난에서 크게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의 쌀과 배추 파동 또한 농정당국의 철학 빈곤과 박약한 소신이 낳은 당연한 귀결이라는 지적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농정의 핵심 목표는 무엇인가? 복잡할 것 없이, 농가소득 지지와 농산물 수급 안정, 그 두 가지이다. 유럽 쪽은 말할 것도 없고, 가장 시장친화적이라는 미국 또한 마찬가지이다. 미국은 각 농산물의 목표가격에 못 미치는 만큼 현금으로 농가소득을 보전하는 데에, 농업예산의 무려 25%를 지불하고 있다. 한두가지 작물이 아니라 밀·옥수수·쌀·우유·소 등 무려 26개 품목 농가의 최저 소득을 정부가 안정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민간 농업정책연구소인 지에스&제이 인스티튜트의 이정환 이사장은 “우리의 농가에 대한 현금 보조금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데, 일부 언론에서 통계 기준의 차이를 무시한 채 우리 농업보조금이 많은 것처럼 오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쌀 직불금이 사실상 유일한데, 그나마 시장가격이 떨어지면 지급 금액이 줄어들도록 설계돼 있다. 농민들이 쌀값 하락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이다.
배추 파동은 농정의 난맥상을 여실히 드러냈다. 정부는 1만5천원 배추 값을 어쩌지 못하고 한동안 손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산지수집상의 밭떼기에 수급기능을 거의 전적으로 맡겨둔 업보였다. 최근 들어 배추 값이 안정을 찾아가는 것은 오로지 수요가 줄어든 합리적 소비행동의 결과일 뿐이다.
지난 8월 말에 취임한 유정복 농식품부 장관은 쌀산업 발전과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연말까지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2012년 봄의 총선 일정을 고려할 때 정치인인 유 장관의 임기는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유 장관은 의욕을 보이지만, 1년짜리 장관에게 큰 기대를 거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다행이라면, 두가지 과제의 정답이 사실상 나와 있다는 점이다.
쌀 대책은 농가소득 안정화가 출발점이다. 그것 없이는, 쌀 수입물량을 줄이자는 쌀 관세화 논의조차 풀어가기 어려울 것이다. 시장가격과 무관하게 직불금 목표가격을 고정하는 것부터 검토할 수 있을 것 같다.
배추 대책은 더 간명하다. 해묵은 농협 개혁이 정답이다. 이번 배추 파동의 와중에 농협의 수급안정 기능을 대신한 것은 생협이었다. 하지만 생협은 대안적 역할 이상을 하기 어렵다. 가격 급등락을 완충하고 농가와 소비자의 공동이익을 도모하는 협동조합의 구실을 이제는 농협이 되찾아야 한다. 최원병 농협중앙회장도 농협 제자리 찾기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할 것이다. 김현대 기자 koala5@hani.co.kr
배추 대책은 더 간명하다. 해묵은 농협 개혁이 정답이다. 이번 배추 파동의 와중에 농협의 수급안정 기능을 대신한 것은 생협이었다. 하지만 생협은 대안적 역할 이상을 하기 어렵다. 가격 급등락을 완충하고 농가와 소비자의 공동이익을 도모하는 협동조합의 구실을 이제는 농협이 되찾아야 한다. 최원병 농협중앙회장도 농협 제자리 찾기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할 것이다. 김현대 기자 koala5@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