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탱크 맞대면] HERI의 눈
다시 집값 얘기다. 가진 사람은 집이 팔리지 않아 이사를 가지 못하고, 없는 이는 전세가격이 다락같이 올라 속이 타는, 한마디로 고통의 연쇄반응이다.
지식, 특히 정책지식이 ‘권력’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삼성경제연구소(SERI)가 뭐라고 할지 궁금하던 차에 “대세 하락은 없을 것”이라는 보고서가 나왔다(9월29일, 박재룡 수석연구원). 건설업계나 당국, 집 가진 이들 중 기분이 좀 풀리는 사람도 있었겠다. 이에 부동산 업계의 누리엘 루비니라 불릴 만한 김광수 경제연구소의 선대인 부소장이 맞섰다. 선 부소장은 이 보고서가 “기존의 부동산-건설업계가 ‘부동산 가격이 오른다’며 마르고 닳도록 써 온 레퍼토리를 짜깁기한 수준의 엉터리 보고서”라고 혹평했다(10월1일, 네이버 칼럼).
이유인즉, 삼성경제연구소가 금융권 담보대출금액에 거의 맞먹는 약 328조원의 전세보증금을 쏙 빼놓고 담보인정비율(LTV)이 낮아 대출이 부실화할 위험이 적다고 분석했다. 직업이 없어 결혼 못한 노총각, 노처녀, 배우자와 사별한 독거노인 등이 1인 가구가 증가하는 주된 이유라는 사실에는 눈을 질끈 감고, 가구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수억원짜리 수도권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계속 뒷받침될 것처럼 결론 내렸다는 것이다. 정부가 8·29 대책으로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한 뒤 9월에 은행권 부동산 담보대출이 급증한 가운데, 한국개발연구원(KDI·허석균 연구위원, 10월13일)도 우리의 부동산 대출이 경기침체와 금리 변동에 매우 취약한 상태라고 경고했다.
이번주 ‘맞대면’에서 시민경제사회연구소 홍헌호 연구위원 역시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가 “절반은 틀렸다”고 지적한다. 그렇지만 말이 씨가 되는(self-fulfilling) ‘닥터둠’식 비관론은 의도와 달리 당국의 섣부른 부양책을 부를 위험이 있으므로 적당히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구체적으로 다주택자의 양도세를 낮춰 거래를 활성화하자는 삼성경제연구소의 제안은 오히려 경착륙을 부를 위험이 있어 지금 쓸 정책이 아니며, 오히려 중·장기적으로 양도세율을 대폭 높여 집을 여러 채 갖고 있어 봐야 남는 게 없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윤순철 경실련 정책실장은 주택가격이 하락했지만 여전히 적정가격의 2배나 된다며, 정부가 수요 확대정책으로 가격을 떠받치려 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미 경제운용에 큰 부담을 주는 가계부채를 갖고 ‘폭탄 돌리기’ 할 때가 아니란 얘기다.
이봉현/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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