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부소장
역시 숫자의 힘은 크다. 마력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싶다. 항간에 운위되는 ‘손학규 대세론’도 사실은 수치가 빚어내는 가시효과 덕분이다. 지난 10월3일 민주당은 전당대회에서 손학규 대표를 선출했다. 존재감을 상실하거나 비호감을 받고 있던 처지의 민주당이 그를 선택한 의미는 분명했다. 변화 전략, 변화를 통해 국민의 관심을 모아보자는 것이다. 손학규를 선택한 것은 어쩌면 불가피했다. 최소한 그만이 식상하거나 꺼려지는 얼굴이 아니면서도 깜냥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것은 도박이기도 했다. 그가 지닌 것으로 평가되는 잠재력은 검증된 바 없는, 말 그대로 잠재력이었다.
이제 이런 우려는 사라졌다. 여론조사에서 손 대표의 지지율 상승세는 확연하다. 최근의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손 대표는 단기 급반등했다. 10월10일 동서리서치 조사에서는 9.0%, 같은 달 15일의 리얼미터에서는 12.7%였다. 10월17일의 한길리서치 조사에서는 14.4%를 기록했다. 문제는 절대 수치가 아니다. 초점은 이전에 비해 2배 이상 올랐다는 것과 전체 지지율 순위에서 2위로 안착하는 모양새다.
과연 이 급반등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잡을까? 우선 손 대표의 지지율이 오른 이유를 따져봐야 한다. 그동안 불임정당이라 불릴 정도로 민주당에는 그럴싸한 대권주자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손 대표가 등장했다. 하물며 호남당이라고 하던 민주당에 수도권 출신의 대표라니….
손 대표의 행보도 적절했다. 대표가 된 후 그의 일정을 보면 그간 보아온 야당 대표의 그것과 달랐다. 민생현장으로 달려가고, 엠비(MB)와 날선 대립각을 세웠다. 당내 권력게임에 몰두하지 않았다. 가능하면 당의 울타리를 벗어나 국민 속으로 뛰어들고(going public) 있다. 이런 모습은 어떤 정치인도, 특히 여권의 유력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조차도 보여주지 못하는 모습이다. 어찌 신선하게 보이지 않으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하나는 반엠비 여론이 광범위하다는 것이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45%는 되는 것 같다. 이런 정도의 국민정서라면 야권의 어떤 인물에게 대중의 관심과 기대가 쏠릴 가능성은 충분하다. 약간의 매력요소와 신뢰만 갖춘 야권 주자라면 상당한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구도라는 이야기다. 이런 구도효과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손학규 강세’가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은 높다.
관건은 손 대표의 선택과 행보다. 그가 당대표로서 인식되고, 당대표에 걸맞은 행보에 그친다면 그의 지지율 상승은 벽에 부닥칠 것이다. 지지율도 주가처럼 단기 상승 후에 조정국면을 맞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조만간 조정국면이 닥칠 것으로 보고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보다는, 아예 상승세를 이어가 조정국면을 최대한 뒤로 미루는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 이것은 전적으로 손 대표와 그의 팀이 보여주어야 할 ‘능력’이다.
나폴레옹은 전쟁으로 성공하고, 전쟁으로 망했다. 그의 몰락을 볼 때면 드는 의문이 있다. ‘일단 권좌에 오른 뒤에도 왜 그는 전쟁에 몰두했을까?’ 해답은 간단하다. 나폴레옹과 전쟁 승리가 하나, 즉 동의어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전쟁 승리 없는 나폴레옹은 국민에게 의미가 없었다는 뜻이다. 나폴레옹도 이 숙명을 잘 알고 있었단다.
어떤 지도자도 자신이 감당해야 할 미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걸 망각하는 것이야말로 몰락의 지름길이다. 손 대표에게 부여된 미션은 분명하다. 변화다. 민주당을 바꾸고, 정치를 바꾸고, 나라를 바꾸라는 것이다. 기존의 못난 민주당과 다른, 기존의 낡은 정치와 다른, 기존의 들쑤시고 파헤치는 국정과는 다른 대안으로 서야 한다.
손 대표는 변화의 숙명을 감당해내야 한다. 그의 성패는 그가 거침없는 변화를 만들어내느냐, 그 변화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철희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부소장
손 대표는 변화의 숙명을 감당해내야 한다. 그의 성패는 그가 거침없는 변화를 만들어내느냐, 그 변화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철희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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