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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문화칼럼] 송경동이 시를 쓰기 힘든 시대 / 노순택

등록 2010-10-29 20:45

노순택 사진가
노순택 사진가
시인이 떨어졌다.

말랑말랑한 시어로 상한가를 치던 어느 시인의 인기가 떨어졌다는 소식이라면 차라리 나으련만, 시인의 몸뚱이가 떨어졌다. 포클레인에서 떨어져 발목뼈가 작살났다.

전화기를 타고 “송경동이 떨어졌다”는 다급한 말들이 꿈틀댈 때, 올 게 왔구나 싶었다. 나는 그것을 부고라고 생각했다. 광화문 한복판을 걸으며, 내가 이렇게 시인의 죽음을 듣는구나 싶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이 빌어먹을 시인을 용서하지 않는 것과 궁극적으로는 그를 지워버리는 것, 그가 미련을 뒀던 온갖 일들에 아예 신경을 꺼버리는 일뿐이리라. 그 죽음은 분명코 타살이지만, 자살임에 틀림없었다. 그는 이미 죽어버렸으되, 나는 내 안에서 다시 그를 죽이기로 다짐했다. 내 경고를 묵살한 너에게, 나는 이렇게 응답하련다.

헌데, 죽지 않았다. 시인의 머리통이 박살난 게 아니라, 발목뼈가 으스러졌다는 얘기였다. 미련한 그 시인이 제 몸뚱이 하나 가누지 못해 포클레인에서 떨어졌다는 전화였다. 실수로.

나는 별안간 시인을 사랑하기로 한다. 언젠가는 그도 고상한 시인 반열에 낄 날이 오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한다. 어쨌건 살았으니까. 으깨져 퉁퉁 부은 발을 질질 끌면서도 기어이 그 위로 다시 올라갔다지만, 거기서 끙끙 앓으면서도 내려갈 수 없노라 생고집을 부렸다지만, 죽지 않았으므로 일단은 용서키로 한다.

사실, 그는 죽을 뻔했다. 죽기를 자처했었다.

6년 넘도록 피눈물 나는 복직투쟁을 벌여온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초라한 천막이 포클레인에 위협당할 때 하필 그 자리에 있었다. 정신 차려 보니 포클레인에 기어올라 맨몸으로 삽날을 막고 있었다. 포클레인은 멈췄지만, 경찰이 들이닥쳤다. 절체절명의 순간, 포클레인 위에서 그가 매달린 건 전깃줄이었다. 그는 고함을 낭송했다. “너희가 다가오면/ 나는 손을 놓는다/ 손을 놓는 건 나지만/ 나를 죽이는 건 너희들이다.”

경찰이 물러가고서도 시인은 열하룻밤을 꼼짝 않고 포클레인을 점거했다. 그러다가 볼품없이 떨어져 발목뼈를 부수고 만 것이다.


어쩌면 깨지고 부서지는 게 그의 삶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늘 실패하는 질문을 붙들고 다녔다. 평생 농사일밖에 모르고 살아온 대추리의 늙은 농부들이 전쟁기지를 지으려는 나라의 몽둥이에 떠밀려 들녘에서 흐느끼고 있다, 이럴 때 시인은 뭘 해야 하는가? 송경동은 현수막으로 목을 감은 채 국방부가 파헤친 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었다.

창문 없는 공장에서 악기를 만들던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렸다, 이럴 때 시인은 뭘 해야 하는가? 송경동은 자본이 철수해버린 불 꺼진 공장에서 울었다. 찌라시를 만들고, 투쟁을 조직했다. 살려고 망루에 올랐던 철거민들이 새까만 재가 되어 내려왔다, 이럴 때 시인은 뭘 해야 하는가? 송경동은 불타버린 남일당을 지켰다. 장례도 못 치른 채 냉동고에서 떨던 죽은 이들의 부활을 종용했다. 최저임금 64만1840원보다 딱 10원 더 받으면서도 일하는 게 삶이었던 여성노동자들이 ‘딸랑 문자 한 통’으로 해고돼 6년을 처절히 싸우고 있다, 이럴 때 시인은 뭘 해야 하는가? 송경동은 해고노동자들에게 달려드는 포클레인을 막아섰고, 그 위에 올랐으며, 경찰이 조여오자 전깃줄에 매달렸다. 아, 전깃줄에 매달린 시인이여, 시는 대체 언제 쓸 텐가.

시인은 끝내 병원으로 실려 갔다. 그가 남기고 간 포클레인 위에는 해고노동자 김소연씨가 대롱대롱 매달려 추위와 무관심과 침묵을 견디며 바짝 말라간다. 노동을 허락받지 못한 노동자와 시를 허락하지 않는 시인이 주고받는 이 고단한 ‘시’.

노순택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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