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겸 정치부문 선임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린 지난해 5월23일 아침. 임채진 검찰총장은 급하게 간부들을 불러모았다. 대부분 “국민 정서 등을 고려해 수사를 종결해야 한다”고 했으나, 이인규 중수부장만은 “이럴 때일수록 검찰이 강하게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도 검찰은 수사 종결을 선언했다.
그날 저녁 중수부장은 영장 하나를 들고 검찰총장 방을 찾았다. “끝까지 가야 한다”며 결재를 요구한 것이다. 그 기세에 눌렸는지 총장은 한밤중에 다시 간부회의를 소집해야만 했다. 중수부장은 결국 자신의 뜻을 꺾어야 했으나, 분을 삼키지는 못했다. 총장 방을 나서자마자, 후배 검사들을 향해 “야이! 너희들이 그러고도 검사냐”고 소리를 질렀다. 총장에 대한 항명으로까지 들렸다고 한다. 며칠 전 한 검사한테 들은 수사 뒷얘기다. 당시의 ‘서거 충격’을 떠올리면서 듣다 보니, 중수부가 얼마나 보통사람들의 법감정과 동떨어져 있는지, 얼마나 조직의 일방적인 논리에 빠져 있는지, 지독한 이물감이 느껴졌다.
검찰에게 지난 1년 반은 치욕의 역사였다.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패륜 검찰’이었고, 한명숙 전 총리를 무리하게 기소했다가 무죄 판결을 받은 ‘무능 검찰’이었으며, 스폰서 의혹이 터져나온 ‘부패 검찰’이었다. 입이 있어도 말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다.
엎드려 있던 검찰이 다시 일어서고 있다. 대형 수사만 10여건을 동시다발로 진행하고 있다. 한번 싸움에 패했으나, 다시 힘을 길러 흙먼지 일으키며 돌아오는 ‘권토중래’가 딱 맞는 상황이다.
하지만 검찰의 귀환에는 어떤 성찰도 보이지 않는다. 김준규 총장은 취임 직후 검찰 수사의 새 패러다임을 깃발로 내걸었다. 피의사실 공표 방지, 별건 수사 금지, 대검 중수부의 직접수사 지양 등이 각론으로 제시됐다. 그러나 최근 검찰 수사를 보면 옛 모습 그대로다. 벌써부터 야당 의원들의 영문 머리글자가 보도되고, 한 중진 의원은 법인카드를 받았다는 의혹이 익명의 검찰 관계자로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게다가 몇몇 수사 주체를 보면서는 “왜 이 사람이 여기에”라는 의문이 든다. 대표적인 인물이 우병우 중수부 수사기획관이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을 직접 신문했으며, 구속 수사를 가장 강력하게 요구한 검사였다. 당시 인책론이 나왔으나, 김 총장의 총애를 받으며 오히려 영전을 거듭했고, 1년 반 만에 재개된 중수부 수사를 지휘하게 된 것이다. 중수부가 그로 인해 문을 닫았다가, 그가 다시 연 셈이다.
이런 식의 검찰 재등장에는 사실 정치권의 책임이 더 크다. 스폰서 문제가 터진 5월만 해도 이명박 대통령은 검찰 개혁을 위한 범정부 태스크포스를 구성하라고 지시했고, 한나라당 의원들은 너도나도 상설 특검이나 공수처 도입을 외쳤다. 하지만 6·2 지방선거가 끝나자 모든 것이 안개 걷히듯 사라졌다. 한나라당의 한 실세 의원은 “언론에 검찰 개혁방안을 한참 얘기하고 다니니, 청와대로부터 ‘검찰 관련 발언은 해도 좋으나, 법안까지 내지는 말아달라’는 주문이 들어왔다”고 뒤늦게 털어놨다. 모든 게 지방선거를 앞둔 ‘쇼’였던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청와대와 검찰의 사전 교감설이 나오고 있으나, 굳이 그렇게까지 해석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임기 말 권력누수를 걱정하는 청와대와 자신의 존재감을 되찾고자 하는 검찰의 이익이 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여야 모두 검찰의 전횡에 수도 없이 데고도, 그 달콤함에 젖어 같은 일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가 또 사고가 터지면 검찰은 자숙에 들어가고, 정치권은 검찰 개혁을 부르짖다가 이내 망각 상태에 들어갈 것이다. 지겨운 반복이다.
김의겸 정치부문 선임기자 kyummy@hani.co.kr
김의겸 정치부문 선임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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