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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종석 칼럼] 6자회담과 한·미의 동상이몽

등록 2010-11-08 20:22수정 2010-11-08 20:25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요즈음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오겠다는데, 한·미 양국이 “먼저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며 이를 막는 형국이다. 만약 6자회담 복귀가 북한에 베푸는 보상책이라면 이런 상황이 이해가 된다. 그러나 북한에게 자신의 핵 포기를 이끌어내기 위한 6자회담에 나가는 일은 보상이 아니라 부담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6자회담에 대해 그동안 기피적 태도를 보여왔고, 나머지 참가국들은 북한을 6자회담의 테이블에 앉히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한·미가 북한의 6자회담 복귀에 대해 심사위원석에 앉아 ‘예스’와 ‘노’를 판정할 수 있는 경우는 유엔의 대북제재가 강력한 효과를 발휘해 북한이 이를 견디지 못하고 굴복할 때뿐이다. 그러나 그 가능성의 문은 북-중 경제관계의 활성화로 이미 작년 가을에 닫혀버렸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정부도 올해 초까지만 해도 북한에 “조건 없는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하였다.

한편 북한이 6자회담 복귀 의사를 밝힌 것은 중국의 요구 때문으로 보인다. 중국은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대북제재 대신에 양국 경제협력의 확대 등 전통적인 북-중 관계의 유지·발전을 선택하여 대북 영향력을 확대시켰다. 따라서 북한은 한·미가 6자회담 복귀를 수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잃을 것이 많아 보이지 않는다. 북한은 중국 정부에 ‘자신은 성의를 다했노라’며 면피용 명분을 축적하는 한편, 6자회담이 지체되는 만큼 핵능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막는 것은 심하게 말하면 ‘이적행위’에 가깝다. 사실 6자회담의 재개는 그 자체로 참가국들에 중대한 전략적 이익이다. 그것은 북핵으로 고조된 한반도 위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며, 북한의 지속적인 핵능력 강화 시도를 견제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작동함을 뜻한다.

그런데도 한·미는 왜 북한의 6자회담 복귀에 미온적일까? 한·미가 동상이몽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양국은 2차 북핵 실험 이후 1년 반 동안 북한의 핵능력 강화를 사실상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며, 유엔의 대북 제재안을 통과시킨 것 외에 이렇다 할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 이는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 북핵정책의 표적이 비핵화에서 비확산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오바마 정부는 ‘전략적 인내’를 말하며 북핵문제를 그럭저럭 끌어왔는데, 이는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그 확산을 막는 정책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추진하기 어려운 정책이다. 북핵 비확산이 실제 목표라면 북한혐오증이 만연한 워싱턴의 분위기를 고려할 때 6자회담 재개가 시급한 사안이 아닐 수 있다. 최근 미국 당국자들의 말 속에서도 점점 북한 비핵화가 정치적 수사로 전락하고 비확산이 부쩍 강조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반면에 한국 정부의 목표는 비핵화이다. 그러니까 한국 정부는 미국을 설득하여 북한 비핵화를 공동의 목표로 확고히 하고, 6자회담을 조속히 재개해야 한다. 그러나 천안함 사태에 대한 북한의 사과를 6자회담 재개의 전제로 내걸면서 발목이 잡혔다. 지금 한국 정부는 북한의 사과 없는 6자회담 재개를 미국보다도 더 달가워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 한·미의 동상이몽이 북한의 6자회담 복귀에 전제를 거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동상이몽의 이면에서 한·미의 북핵정책이 ‘비핵화’와 ‘비확산’으로 균열되고 있다. 걱정스러운 일이다. 한국 정부는 미국이 더이상 비확산 쪽으로 선회하지 않도록 견제하고 이를 위해 6자회담 재개를 서둘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 균열은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언젠가 비확산에 대한 미국의 속내가 겉으로 확인되는 순간 우리는 북한의 핵보유가 미국에 의해 사실상 공인되는 충격에 휩싸일지 모른다. 그리고 비합리적인 대북정책으로 일관하다가 부지불식간에 미국의 비확산 정책을 인정해온 꼴이 되어버린 정권의 무능을 뒤늦게 한탄하게 될 것이다.


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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