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들 백일장에 ‘G20’이 시제로 나왔답니다. 도대체 누구의 생각인지. 아이들은 자기 주변의 얘기를 솔직하게 쓰라고 배웠을 텐데, G20에 대해 어떤 진솔한 글이 나올 수 있겠어요?”
경북 농촌마을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는 한 학부모의 얘기였다. 중학교 교사 ㄱ씨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우리 반 학생이 백일장 시 부문에 학교 대표로 나갔는데, 주제가 G20이 나왔더래요. 학생이 ‘G20으로 어떻게 시를 쓰냐’고 묻더라고요. 참가국을 차례로 대면서 아~미국이여, 아~일본이여~이렇게 쓰라고 할 수도 없고…”라며 씁쓸해했다.
경북에서 해마다 열리는 ‘화랑문화제’ 지역예선이 한창이던 지난 9월, 문예와 미술 부문에 참가한 학생들 앞에 ‘G20’이 소재로 주어졌다. 유명 지식검색 사이트에는 ‘운문 주제로 G20이 나왔는데 어떻게 하냐’는 ‘급질문’이 떴고, 블로그에는 “미술쌤이 G20을 주제로 그림을 그려 오라는데 도대체 감이 잡혀야지”라는 글이 올랐다. 한마디로 ‘대략난감’,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경북도내 23개 시·군에서 모두 같은 주제를 냈단다. 도교육청에 이유를 물었다. “지역 예선에서 문예와 그림 주제로 G20 정상회의를 반드시 포함시키도록 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내가 좋아하는 과일, 가을 운동회, 우리 가족과 같은 주제와 함께 G20 정상회의도 포함시키라는 지시였다. 세계적으로 국격을 높이는 행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설명도 붙었다.
2003년 경북도가 ‘술잔 안 돌리기 운동’을 홍보한다며 학생들을 대상으로 절주·금주 표어와 포스터를 공모한 적이 있다. 그때도 “학생들이 우리 음주문화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교육적 효과를 들먹였다. ‘돌아가는 술잔 위에 흔들리는 우리 가정.’ 당시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출품해 최우수상을 탄 표어다. 초등학생들에게 술잔 안 돌리기를 주제로 표어를 쓰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요 20개국 정상회담을 주제로, 설명문도 아닌 시를 쓰라는 건 억지스럽다. 시제를 낸 어른들은 G20으로 어떤 시상이 떠오르는가?
여기까지는 웃어넘길 수 있다. 이른바 ‘주요 나라들’ 가운데 이렇게 촌스러운 나라가 있겠느냐고 한마디 해주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런데 ‘G20 포스터’ 사건은 다르다. 정부 홍보물에 G20 풍자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로 국민을 잡아 가두겠다고 겁박하는 행태는 그냥 웃어넘길 수가 없다. 아니, 웃음기가 싹 가신다. 한번 더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구속영장이 기각될 줄 뻔히 알면서, 왜 이런 무리한 일을 하는지 생각해보면 더 그렇다.
2008년 대구에 사는 30대 주부가 살인예비·음모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일본 야쿠자를 사든지, 프랑스 용병을 사든지 해서 쥐새끼 쏴죽이고 싶습니다’라고 인터넷 카페에 올린 글이 대통령 살인 음모로 의심된다는 게 이유였다. 누구나 농담으로 여긴 글을, 경찰만 사뭇 진지하게 수사에 나섰다. ‘킬러를 고용하겠다는 게 수사할 가치가 있다’고 주변 탐문에 소환조사까지 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건전한 상식이 있는 사람들은 코미디라고 웃는다. 그런데 다음 순간, 자판을 두드리다 주춤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앞쪽에 ‘쥐새끼’라는 단어를 옮겨적으며 기자도 순간 멈칫했다. 어처구니없게도 정말 그랬다. 자·기·검·열. 계속 써내려가지만, 찜찜함이 따라붙는다. 기꺼이 비웃음을 감수하고 무리수를 두는 이유가 여기 있다.
박주희 지역부문 기자hop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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