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창환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가 마무리됐지만, 정부와 보수언론의 기대와는 딴판으로 밋밋하게 끝났다. 국격 향상, 수십조원의 경제효과, 참가국 모두를 만족시키는 획기적인 중재안 등을 거론하던 호들갑과는 달리 회의가 끝난 뒤에는 왜 이토록 조용한지 신기할 따름이다. 보수언론은 G20의 본질과 산적한 미완의 과제는 외면한 채 가십거리로 지면을 채운다. 외국 언론의 반응은 아주 심드렁하고 심지어 냉담하기까지 하다.
G20 체계의 근본적인 결함 가운데 하나가 비밀주의이다. 구체적인 논의과정과 쟁점에 대해서는 외부자들이 거의 접근할 수가 없다. 접할 수 있는 자료는 정상선언문과 합의문이 전부다. 전자는 20개항으로 이뤄져 있고 20개국 정상이 공동으로 합의한 사항들을 집약했다. 서울 정상합의문은 74개 조항과 세개의 부속서, 하나의 보완문서로 구성됐다. 세계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위한 틀 마련, 국제금융기구 개혁, 금융규제 개혁, 개발, 무역 및 기후변동 등 세계경제의 주요 현안이 모두 포함됐다.
우선 세계경제의 성장을 위해 G20 틀을 중심으로 협력을 지속해야 한다는 인식을 재확인했다. 뜨거운 쟁점이 됐던 글로벌 불균형 해소도 이 차원에서 제기됐다. 환율 유연성을 제고하고, 경쟁적 평가절하를 자제하며, 준비통화국인 선진국은 환율의 과도한 변동과 무질서한 움직임을 감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경상수지·흑자 축소를 위한 구체적인 수치 및 가이드라인 설정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2011년 상반기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로 넘겨졌다. 경상수지 불균형 해소 및 환율전쟁과 관련해, 이번 경주 재무장관회의에서 흘러나온 ‘기적에 가까운’ 중재안은 부도수표임이 확인됐다.
미국 경기 회복이 지지부진하고 부동산가격도 추가 하락 조짐을 보이자 미국 정부는 전세계의 이목을 무시한 채 추가로 달러 폭탄을 풀어 달러화 약세를 더 부추겼다. G20 회의가 열리기 직전에 미국이 이런 정책을 단행했으니 누가 선뜻 경상수지 불균형 해소를 위한 양보안을 내놓겠는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미국의 제2차 양적완화 정책을 따지겠다는데, 의장국 한국은 도대체 무슨 역할을 했는지 의심스럽다. 중국과 미국의 통화전쟁 와중에 급격히 달러가 유입돼 통화 절상 압력, 자산거품 및 인플레 압력 등 삼중고에 시달리는 신흥시장 국가들의 고충을 어떻게 반영하려 했는지 궁금하다.
사실 G20의 핵심 의제는 환율조정 및 경쟁적 평가절하 자제 문제가 아니다. 국제통화기금의 거버넌스 개혁 및 민주화, 기존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규제(바젤 Ⅱ)의 문제점 보완 및 개혁, 거대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 및 대마불사, 파산처리에 대한 컨센서스의 마련, 파생상품 거래에 대한 규제 등 각종 국제금융규제 개혁 및 공조 문제였다. 이번 회의에서는 이런 핵심 의제들이 국제수지 흑자·적자 불균형 조정안에 가려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앞으로 G20 정상회의에서 제일 중요한 핵심 의제는 금융규제 개혁과 국제적 금융규제의 조정 및 협조가 될 것이다. 이 문제는 금융서비스업의 경쟁력 강화와 이를 통한 금융헤게모니 장악에 국가경제의 사활을 거는 영국과 미국 등의 국가들에 가장 긴요한 문제로 떠오를 것이 틀림없다.
향후 세계경제 판도를 좌우할 각종 금융규제가 소수의 금융 전문가·관료·엘리트들의 논의와 결정에 의해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훨씬 더 커졌다. 민주적 감시와 견제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금융 관련 주요 핵심 규제와 기준들을 만드는 바젤 은행감독위원회나 금융안정이사회(FSB)뿐만 아니라 공정가치 회계, 나아가 최근의 국제회계기준(IFRS)의 도입을 주도한 주요 국제회계 기준 심의회 등에 대해서도 감시와 견제가 필요하다. 연금, 가정의 기본 터전인 주택, 소비, 교육, 심지어 의료서비스 등 우리 일상생활의 대부분이 점차 금융화되어 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금융화를 위한 제도적 틀을 만드는 핵심 주체들이 바로 이 국제기구들과 초국적 민간기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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