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실장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한국형 개발 모델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 회의 등 적절한 기회에 제안”하겠다고 말했다. 이번에 G20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개발 의제가 논의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한 세대 만에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된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주목을 받는 것도 분명하다. 이 대통령의 표현대로 우리나라는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까.
21세기가 막 시작된 2000년 9월, 191개 유엔 회원국은 지구촌 빈곤을 2015년까지 반으로 줄이기 위해 새천년개발목표(MDGs)를 채택했다. 그 내용은 1) 극심한 빈곤과 기아의 퇴치, 2) 모든 어린이가 초등교육 마치기, 3) 성평등 촉진과 여성 역량 강화, 4) 어린이 사망률 낮추기, 5) 임산부 건강 개선, 6) 에이즈와 말라리아 등 질병 줄이기, 7) 환경의 지속가능성 보장, 8) 발전을 위한 전세계적 동반관계 구축 등 8가지다.
다른 개도국 지원을 거론하기에 앞서, 우리나라가 이런 목표들을 이미 졸업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적어도 3)과 7)에서는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 환경 지속가능성은 세계 최하위 수준이고, 성평등 또한 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개발 자체가 그만큼 취약한 것이다.
국외 원조도 내세울 게 못 된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공적개발원조(ODA)로 8억1600만달러(9000억원)를 지출했다. 국민총소득(GNI)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0.1%로, 경제협력개발기구 개발원조위원회(DAC) 24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다. 원조의 질도 문제가 많다. 돈을 주면서 자국 물품을 사도록 하는 ‘구속성 원조’가 전체의 3분의 2가량을 차지한다. 개발원조위 평균치의 5배나 된다. 무상원조가 적고 유상원조가 많으며, 특히 최빈국에 대한 유상원조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래서 원조를 받는 나라의 빈곤 감소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측정하는 ‘원조 효율성’에서 우리나라는 늘 최하위권이다.
우리나라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뤄냈지만 환경오염, 인권침해, 사회갈등, 천민자본주의 풍조, 가치관의 혼란 등 심각한 비용을 치렀으며, 많은 문제점이 아직도 온존돼 있다. 진지한 반성 없이 과거 경험들을 잘 포장한다고 해서 좋은 모델이 될 수는 없다.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는 4대강 사업만 봐도 개발에 대한 정부의 기본인식이 어떤 것인지 충분히 짐작이 된다. 다른 개도국이 이 사업을 모방하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사실 국제사회의 개발원조 정책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1960~70년대 3%이던 개도국들의 1인당 국민소득 증가율은 1980~2000년 1.7%로 떨어졌고, 최빈국이 많은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 지역은 같은 기간 1.6%에서 0.2%로 하락했다. 특히 1980년대부터 본격화한 신자유주의 정책기조는 개별 국가뿐만 아니라 지구촌 전체의 빈익빈 부익부를 심화시켰다. 이런 반성에서 나온 것이 새천년개발목표이지만, 이행 실적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이 대통령은 이번 회의에서 “개도국 스스로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고 자생력을 기르도록 하는” ‘새로운 개발전략’을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과거 경험을 일반화하고 이제까지의 개발원조 정책을 합리화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발언이다. 지구촌을 휩쓴 신자유주의 체제가 밑바닥을 드러낸 지금, 철지난 개발독재 경험을 한국형 개발 모델이라는 이름으로 수출까지 하려는 것이라면 시대착오일 뿐이다.
중국의 오랜 신화에 ‘여왜’라는 여신이 있다. 오색 돌을 불에 녹여 하늘의 갈라진 곳을 메우고, 큰 거북의 다리를 잘라 하늘을 떠받친다. 세상에 큰 흠이 있을 때는 고쳐서 다시 살 만하게 만드는 보천(補天)이 필요하다. 그 주체가 여왜다. 우리 사회는 지금 보천을 서둘러야 할 상태에 있다. 그런 의지와 실천역량조차 보여주지 못한 채 한국형 개발 모델을 말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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